2033년의 세상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오늘 나는 포장 없이 알맹이만 팔던, 제로 웨이스트 가게 문을 닫는다. 공사로 변경된 부분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마지막 출근을 하는 길이다. 공사업체는 이제 ‘분별해체’가 의무화되어 예전처럼 막 부술 수 없고 소재별로 철거해야 한단다. 그전까지는 인테리어 내외장재와 금속 골조, 폐콘크리트 등이 아비규환처럼 섞여 처리되었다. 따라서 통계상 높은 재활용률에도 불구하고 모래를 파헤치는 대신 폐자재를 재활용해 지은 건축물은 거의 없었다. 이제 모든 공사 현장에서 분별해체는 물론 순환자재를 30% 이상 사용해야 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이후 ‘쫑파티’를 준비하러 망원시장에 갔다. 주메뉴는 배달음식으로 시키고 간단한 샐러드 재료와 과일만 사기로 한다. 프랑스에서 시행된 과일과 채소 플라스틱 포장 판매 금지법이 국내에도 시행되어 사과, 바나나, 배는 물론 양배추, 토마토, 당근 등을 포장 없이 살 수 있다. 나는 재사용 실리콘 봉지와 천 주머니에 과일과 채소를 필요한 만큼씩 담았다. 예전에는 가지 5개가 비닐에 묶음포장돼 있어 2개는 먹고 3개는 썩어서 버리곤 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배달음식 앱으로 가지로 만든 채식 장어구이 덮밥에 채식 계란을 추가하고 콜리플라워 탕수육을 주문했다. 마지막에는 다회용기 사용 버튼을 클릭했다. 1000원의 용기 반납 수수료를 내지만 일회용기를 선택하면 플라스틱세 2000원을 내므로 다회용기가 더 이득이다. 다회용기 업체들은 수수료와 플라스틱세에서 나온 기금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역별로 용기 세척소가 생겼는데 다회용기 회수와 세척 등으로 로컬 일자리가 생겼다. 집에 가는 길, 장바구니가 무거워 공공 자전거를 대여했다. 거리에 방치된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고 본체를 리폼한 재활용 아트 자전거 ‘따릉이’였다.

10년 전 국내 최초로 화장품과 세제를 포장 없이 판매한 우리 가게는 나름 ‘핫플’이었다. 이후 촘촘한 일회용 규제와 리필 문화가 뜨면서 웬만한 슈퍼마켓마다 리필 코너가 생겼다. 그뿐 아니라 세척업체와 손잡은 기업들이 너나없이 재생원료로 만든 다회용기에 간장, 설탕, 부침가루, 화장품 등을 담아 팔고 용기를 회수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기업은 높은 플라스틱세를 내고 연차별 플라스틱 사용 감축량을 달성해야 한다. 이러니 우리가 망했지. 우리 가게가 존재할 이유는 사라졌다. 우리는 동네 수리 카페와 이케아 매장처럼 큰 자원순환 쇼핑몰, 다회용기 세척소 등에서 새로 일을 구하는 중이다. 더불어 동네 재활용 정거장에서 ‘쓰레기 도슨트’로도 활동한다.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작년에 나는 세척업체와 손잡고 일회용컵 없는 카페를 열었다. 이미 배달음식 앱은 일부 지역에 한해 다회용기를 제공한다. 영국은 플라스틱 1㎏당 약 1000원의 플라스틱세를 부과한다. 올 6월부터 카페 일회용컵에는 300원의 보증금이 붙는다. 나는 이 글을 시리아 내전으로 형성된 난민촌의 폭설 사진을 보며 쓴다. 시리아 내전의 원인 중 하나는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이었고 이젠 사막에 쏟아진 폭설에 무너지고 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넘쳐난다. 하지만 꿈을 꾸겠다. 우리에게 아직 행동할 시간과 의지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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