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관타나모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문제적 ‘폭력의 성채’ 관타나모
한국의 외국인보호소가 그렇다

외국인 무한정 구금 없애려면
출입국관리법 바꾸는 게 우선
‘어필’에 우리 의지 보여주시라

영화 <모리타니안>의 마지막 장면. “오, 나의 변호사님들!” 모하메두는 낸시와 테리를 크게 껴안는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용의자로 체포되어 이듬해 관타나모에 수감된 이후 줄곧 거기 있었다. 한 차례의 재판도 없었다. 수년 동안의 고문만이 있었을 뿐이다.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마침내 2010년 석방 판결을 받았다. 모하메두가 얼마나 기뻤을지 짐작이 간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그런데 들뜬 의뢰인과 달리 변호사들의 표정은 어둡다. 낸시가 이야기를 꺼냈다. “정부의 항소에 대응해야 해요.” “뭘 항소한다는 거죠? 우리가 이겼잖아요.” “그들은 법정에서 문제를 질질 끌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모하메두는 낸시의 말을 끊고 묻는다. “잠깐만요, 이게 얼마나 걸리죠?” 테리가 답한다. “확실하지 않아요.” 모하메두는 무너져내린다. “도대체 얼마나 더 있어야 집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몰라요. 하지만 얼마가 걸리든 우리는 여기 있을 겁니다.” 영화는 모든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모리타니아 사람 모하메두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모하메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이 이상한 구금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군과 교전한 군인이라면 국제법에 따라 송환되어야 하고, 범죄용의자라면 국내법에 따라 재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는 사람을 풀어줄 수 없다며 용의자들을 무한정 구금하고 있다.

관타나모의 실상이 처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끔찍한 고문에 경악했다. 구타는 물론이고 물고문에 성고문까지. 어떻게 이런 폭력이 가능한가. 모하메두의 재판은 더 큰 폭력이 그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관타나모에서 자행된 폭력이 아니라 관타나모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관타나모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으며 왜 지금도 폐쇄되지 않는가.

국민들의 지지만 있다면, 아니 일정한 묵인만 있어도, 국가는 이방인들을 무한정 구금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장치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이것을 알고 있고 심지어는 지지하기까지 한다. 이방인은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손실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이며, 설령 무해하다고 해도 어떻게 되든지 국민들에게는 별 상관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타나모라는 폭력의 성채가 딛고 서 있는 기반이다.

관타나모에 관한 영화를 소개한 것은 우리에게도 그것을 닮은 성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보호소가 그것이다. 지난해 9월 말 고문 피해 사실을 폭로한 화성외국인보호소의 M씨. 작년 여름 ‘보호일시해제’를 요청한 그에게 법무부는 서너 줄의 짧은 불허통보를 보내왔다. “귀하의 보호일시해제 청구사유를 검토하였으나 … 보호를 해제하여야 할 불가피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불허 결정함. 끝.” 그래서 M씨는 자신이 고문받은 장소, 그가 ‘화성 관타나모’라고 부르는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 언급했지만 외국인보호소에 ‘보호된’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실제로는 강제 구금인데도 ‘보호’라는 이상한 말을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은 체류기간을 초과했거나 체류자격을 상실해 강제퇴거라는 행정명령을 받은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데 영장도, 재판도, 형기도 없이 단지 관청의 장이 내린 명령서에 따라 끝을 알 수 없는 구금이 이루지고 있다.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 M씨 같은 난민신청자에게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난민은 살기 위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인데, 대한민국은 송환이 불가능한 외국인을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구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보호소의 또 다른 M씨는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죄 없는 수감자로 살 것인가, 고국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얼마나 걸리죠?” “확실하지 않아요.” 관타나모의 모하메두가 들은 이야기를 화성외국인보호소의 M씨도 들었다. 개인 모하메두가 결국에 석방된 것처럼 개인 M씨에 대해서도 보호해제가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쿠바에 있든, 화성에 있든 관타나모가 있는 한 M씨들의 무한정 구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을 바꾸는 데서 시작하자.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1만명을 목표로 10일까지 서명을 받고 있다(https://www.campaigns.kr/campaigns/560). 최소한 인구의 0.02%라도 이런 폭력의 성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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