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쳤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우리를 부르는 호칭은 많다
정신병자, 사이코, 미친XX…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우리는 당신께 양해 구하지 않고
함부로 오해받을 사람도 아니다

미친 사람. 돌이켜 보면 나는 그를 자주 만났다. 가까운 친척도 있었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도 있었고, 우러러보던 선배도 있었고, 내 수업을 듣던 학생도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믿을 사람이 당신밖에 없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의사와 가족들이 서로 짜고 자신을 병원에 집어넣으려 한다고. 또 다른 그는 길거리에 서서 국가기관이 자신을 감시한다며 모순과 비약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외치고 있었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미친 사람. 그런데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친척이 도움을 청했을 때는, 말은 듣지 않고 좋은 의사를 구해준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발병한 동료가 복도를 뛰어다녔을 때는 빨리 119를 부르라며 소리쳤다. 거리에서 모든 국가기관이 자신을 감시한다고 소리치던 선배를 보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군 채 지나쳤다. 내 수업을 듣던 학생에게는 제발 그만 말하라며 손을 잡고 주저앉혔다. 나는 그가 말하기 전에도, 말하는 동안에도, 말한 후에도 말을 듣지 않았다. 눈앞에 있었지만 보지 않았고 수화기를 댔지만 듣지 않았고, 손을 잡았지만 주저앉혔다. 무슨 위험이라도 닥친 듯 도망치기 바빴다.

최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연극 <우리는 미쳤다>(손성연 작)를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여기서 처음으로 미친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이 연극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미친 사람의 자기소개를 받았고, 그의 고통과 슬픔, 기쁨과 소망에 대해 들었다. 급박한 사건이 아니라 차분한 일상에서 ‘나는 나’라고 말하는 정신장애인들을 처음 만난 것이다.

나는 나이고, 나로서 늙어가고 싶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라면 밑줄을 그었을 것이고, 비장애인의 말이라면 그 빛나는 ‘프라이드’에 눈이 부셨을 텐데, 정신장애인이 말하니 그의 ‘매드 프라이드’가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린다. 정신장애인 한에서 ‘너는 너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런 것이다. 네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며, 약으로 네 정신을 묶어둘 수 없다면 너는 병원에 묶여 있어야 한다.

이 연극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연기하고 있는지. 배우가 관객 앞에 서기 전 무대 뒤에서 여러 번 심호흡하는 것처럼 이들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 골방에 들어가 마음을 여러 번 쓰다듬는다. 그러나 서툰 연기 때문에, 아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배역 때문에 이들은 정체를 금세 들킨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그걸로 힘들다고 판단되면 아예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담임선생님도 그 반 학생인지를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동료들도 그가 모임에 참석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숨는 것이다.

마치 방해물 없이 혼자 자라는데도 가지가 구불구불한 나무 같다고 할까. 목을 맬 나무를 찾던 극중 인물 ‘휴일’은 이렇게 말한다. “이 나무는 좀 달라요. 사방에 나무들이 있어 혹시라도 닿을까봐, 닿으면 괜히 그 나무가 햇볕을 쬘 때, 비를 맞을 때, 눈을 맞을 때, 혹시라도 방해받을까봐 꾹 참고 아슬아슬하게 자랐어요. 그래서 모든 가지들이 구불구불해요.”

사람들에게 닿을까봐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감추다보니 가지들이 뒤틀린 것이다. 혼자 남는 게 누구보다 두려운 사람들인데도 혼자 있기 위해 애쓴 결과 이들은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이들을 혼자로 만들기에, 혼자인 이들은 방에 들어가 둘, 셋, 넷을 만든다.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기에 자신에게 말을 걸어줄 둘, 셋, 넷을 만들고,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에 마음을 털어놓을 둘, 셋, 넷을 만든다. 세상이 건네는 것은 약뿐이다. 그런데 약은 이들을 다시 혼자로 되돌려 놓는 일만 한다. 조현정동장애를 가진 ‘해인’이 친구인 ‘환청’에게 말하듯. “이상해, 널 없애는 약은 많은데, 너의 빈자리를 채우는 약은 없다니.”

연극이 끝날 즈음 이들은 금을 밟지 않기 위해 몸을 바둥바둥 떠는 일을 그만둔다. 그러고는 힘을 내서 말한다. “저는 아직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이런 저를 부르는 호칭은 많습니다. 정신병자, 사이코, 미친 새끼, 정신질환자, 엉망진창… 이런 제가 매드 프라이드를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 외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미쳤다.”

세상 바깥 혼자만의 방에서 둘, 셋, 넷을 만들어낸 이들이 누구보다 세상 안에서 둘, 셋, 넷을 갈구했던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 따르면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당신이 둘, 셋, 넷이 되어주겠다고 뛰어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양해를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당신이 함부로 오해해도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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