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예방’법이 되려면

조미덥 산업부 차장

아이가 두 돌을 갓 지났을 때였다. 키즈카페에서 아이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모서리에 부딪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모서리에 보호테이프를 붙여놓은 덕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키즈카페 곳곳에서 보호테이프와 충격완화쿠션, 추락방지망 등이 보였다. 키즈카페 입장에선 이런 것이 다 비용일 테지만 만약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고 그 일이 입소문 나면 영업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수할 비용이란 생각을 했다.

조미덥 산업부 차장

조미덥 산업부 차장

지난달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노동자 안전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전에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제철소 쇳물에 빠지고, 조선소에서 추락해 사망해도 기업의 재무제표와 주가, 원청 책임자들의 신상엔 별 변화가 없었다. 사회의 방치 속에 ‘죽음의 외주화’는 계속됐다. 법이 시행되면서 노동자 사망사고의 위상이 달라졌다. 회사 대표의 법적 처벌과 재무제표상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현장을 키즈카페처럼 만들 순 없겠지만 기업은 노동자 안전을 위한 비용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해야 할 조치’를 위해 각 사업장이 현장에 안전관리 조직을 만들고, 사고 위험이 있는 곳을 점검하고, 행동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예전엔 노동자 사망이 주가에 변수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 1월13일 LG디스플레이는 공장에서 화학물질 누출로 2명이 심정지하는 등 6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지만 다음날 증권사들이 실적 개선 전망을 내놓으면서 주가는 오히려 5.1% 올랐다. 포스코는 지난해 2월8일 하청업체 직원이 설비에 몸이 끼어 숨졌지만 주가는 이후 3거래일 연속 상승(3%)했다. 반면 법 시행 후 첫 사망 사고가 난 삼표산업(비상장)의 계열사인 삼표시멘트는 사고 후 개장 첫날 주가가 7% 급락했다.

생산 현장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정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광주 아파트 공사 현장 붕괴사고도 사고 전 거푸집이 터졌을 때 노동자들이 작업을 멈췄다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회사가 중대재해 위험을 대비해 작업중지와 노동자 대피, 위험 요인 제거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6개월에 1회 이상 점검하도록 한 조항이 들어갔다. 하지만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실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불합리한 원·하청 관계 해소가 근본 해법이겠지만, 당장은 원청이 작업중지권을 써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작업중지 시 휴업수당과 손실보전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3월 선제적으로 현장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이후 월평균 360건의 작업중지권이 발동되고 이 중 98%는 안전조치가 이뤄졌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협력업체를 평가할 때 작업중지권이 얼마나 활성화됐는지를 반영하고 있다.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작업중지라는 작은 손해를 감수하기로 한 삼성의 셈법을 다른 기업들도 참고하길 바란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