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참사와 ‘무데뽀 정신’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광주광역시 화정 아이파크 신축 공사장에서 아파트 일부가 붕괴된 지 꼬박 2주가 지났다.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21세기 들어서도 끊이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심정적으론 고교 재학 시절 발생했던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버금갔다. 그것도 업계 9위 대기업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학동 참사에 이어 채 1년도 안 돼 사고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세간의 시선도 비슷한 듯하다. 광주의 한 재건축정비조합은 현산과의 계약 취소 절차에 돌입했고, 서울 잠실의 한 재건축조합 역시 공사 현장에서 아이파크 로고를 지웠다. 현산으로선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셈이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현산의 전신은 한국도시개발이다. 한국도시개발은 사실 현대건설이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1976년 주택사업부를 독립시킨 회사였다. 이 회사가 1977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아파트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사원들에게 분양해야 할 몫을 유력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언론인 등에게 특혜 분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이 회사 사장이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한국도시개발은 1999년 현대그룹과 계열 분리되면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현산’이 됐다. 그리고 현산이 지은 아파트들은 ‘아이파크’로 거듭났다. 결국 현산의 모태는 현대건설인 셈인데, 현대건설이 어떤 회사인가. 현대그룹의 근간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정신이 가장 잘 표현된 회사다.

현산과 관련된 두 번의 참사를 지켜보면서 재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옛이야기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봐 해봤어?’ 등 이른바 ‘무데뽀’ 정신 말이다. 무데뽀는 ‘총도 없이 전투에 나간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됐다.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덤비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이나 여러 기록을 보면 무데뽀 정신은 칭송 일색이다.

1952년 한국전쟁 중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을 몰래 방문했을 때 묵을 시설이 마땅치 않자 정 명예회장이 나서 피란으로 비어 있던 부유층의 집들에서 가져간 양변기·욕조·세면대 등으로 공사를 했던 일이라든가, 중동 개발에 나서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그는 “더운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된다”며 실제로는 노동자들을 24시간 3교대로 투입했다는 일화 등이다.

현산이 아이파크 붕괴사고를 낸 배경에는 준공날짜를 맞추기 위해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음, 비산먼지, 파편 추락 등 각종 민원과 행정처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골재 품귀 속에서 강도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건축 계획을 제출한 지 5개월 만에 사업승인·착공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반세기 전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무데뽀 정신은 도전 정신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성공 철학이었을지 모르지만 21세기 무데뽀의 정신은 참사 그 자체로 귀결될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시대는 이미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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