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우리는 한 그루 나무인 적이 없었다.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우리는 언제나 숲이었고, 연결이자 대화이며 통로였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벌레가 경계 없이 드나들었고, 크고 작은 짐승이 삶을 기대어 왔다. 이끼와 버섯은 더부살이로 번성했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 우리 몸을 드나들며 둥근 줄기와 초록 잎사귀를 만들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과거와 미래가 느릿느릿 되풀이되었다. 밝음과 흔들림과 맑음의 기억이 단단하고 성글게 켜를 이루며 땅속과 땅 위로 뻗어나갔다.1)

너는 사람의 아이였으나, 숲의 그늘에 눕혀졌다. 어미를 일찍 여읜 너는 우리의 상처에서 솟아나는 즙을 마시며 자랐다. 너를 먹인 상처는 아물어 우리의 하얀 몸에 검은 눈동자로 새겨졌다. 상처인 눈동자는 공기의 떨림을 보고 햇빛의 결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몸에 흐르는 즙을 나눠 마신 너도 이따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었다. 우리를 떠나 사람들 무리로 돌아가면서 너는 그 모든 것을 잊었다.

어느 날 너는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리꽂히는 독수리를 보았다. 독수리는 네 눈앞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양 한 마리를 움켜쥐고 날아올랐다. 그때 너에게 깨달음이 왔다. 어떤 사람은 날개가 없는 새로 태어나는데,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너는 외딴 곳에 누워 아흐레 밤 아흐레 낮을 앓았다. 신아버지가 네 머리를 갈라 잘 씻어 정신을 맑게 했다. 아픈 이의 영혼을 찾을 수 있게 금가루를 뿌려 눈을 밝혔다. 손가락에는 갈고리를 심어 길 잃은 영혼을 붙잡아 거머쥐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신아버지는 네 심장을 화살로 꿰뚫었다.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아픈 이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네가 깨어나자 신아버지는 말했다.

“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먼저 도와라. 악령에게서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달라고 신께 빌어라.”2)

영혼을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사람은 병에 걸린다. 너는 헤매는 영혼을 붙잡아 아픈 이의 몸속에 되돌려 놓는 사람이 되었다. 영혼을 찾으러 떠날 때 너는 우리의 몸에 상처를 만들어 그것을 딛고 하늘로 올라갔다. 우리의 뿌리는 땅속에, 몸은 땅 위에, 가지는 하늘에 닿아 있으므로, 우리는 너의 사다리, 너의 눈동자, 너의 날개였다. 그렇게 너는 돌아와 우리와 함께 숲이 되었다. 하늘 아래 오직 우리에게만 솟아오르는 힘이 있던 시절의 일이다.

과거와 미래가 몇 차례 자리를 바꾼 뒤 눈을 떴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거대한 빌딩들 사이에 서 있다. 너와 나는 이제 숲이 아니다. 가장 높이 뻗은 가지도 하늘에 닿지 않는다. 아프지 않으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아픈 이들은 병원에 간다. 방황하는 영혼을 찾아 하늘로 오르던 너는 어디로 사라졌나.

“처음 노동자들이 오르던 한강철교는 쇠사다리가 잘리고, 구리스를 발라 더는 오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도심의 CC카메라탑이나 송전탑에 올라갔는데 이 또한 사다리가 모두 잘리고, 카고차를 대지 않으면 오를 수 없도록 만든 지 오래입니다. 다음으로 개발된 곳이 도심 옥상의 광고탑 위였습니다…. 이젠 목숨 걸고 오르려 해도 오를 곳조차 없는 게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전격적으로 아시바를 쌓아 올려 고공에 돌입했던 적도 있습니다.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투쟁 때 무대 앞에 조명탑을 만든다는 핑계로 순식간에 4단 망루를 쌓고 올라갔다가 새벽까지 싸운 밤도 기억납니다…. 노동자대회가 열리던 여의도공원 후미진 곳에서 조심스레 얘기할 때도 궁금한 것은 올라갈 곳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끝내주는 곳을 찾았다’라고 말하는 파인텍의 차광호를 보며 가슴이 미어지던 기억도 납니다. 그 새벽에 고공에 돌입한 뒤 두 해의 겨울을 거쳐 426일 만에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차광호가 결행한 408일까지 더하면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기록이었습니다.”3)

1) <나무의 노래>, 해스컬 2) <샤마니즘>, 엘리아데 3) 송경동의 편지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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