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의 보이스 오버] 조감하는 능력

매릴린 먼로는 군수공장에서 일할 때 찍힌 군 홍보물(사진)로 할리우드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미 육군비행단 소속 제1영화부대의 지휘관은 훗날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레이건은 누구보다 이미지의 영향력을 잘 알았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과 신무기의 조합은 군의 사기를 높였고 매릴린 먼로는 공장을 나와 직업 모델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사진에서 먼로가 선전하고 있는 신무기는 최초로 양산된 군사용 무인항공기, 드론이다. 옛 스타의 무명 시절 사진에 삽입된 드론이 어색하겠지만 드론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드론은 군사용은 물론이고 교육용, 산업용으로 응용 범위를 넓히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다양한 시각적 표현이 요구되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드론의 활용도가 높다. 드론 장비 덕에 비교적 저렴한 비용과 경량화로 어려운 앵글의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좁은 공간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는 시점샷도 무시할 수 없으나 드론의 장기는 아찔한 높이의 건물 위에서 하이 앵글(위에서 아래를 찍는 촬영술)로 추락의 긴장감을 조성할 때 효과 만점이다.

예전에는 제작비 여유가 있는 영화에서나 하이 앵글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이 앵글에 담긴 장대한 스펙터클은 영화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였다. 하이 앵글에 포착된 자연 풍광은 숭고한 아름다움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장관이 아니다. 카메라의 앵글은 시지각에 기반한 고유의 정서가 있다. 비스듬한 앵글은 공간의 균형을 무너뜨려 불안감을 일으키고 하이 앵글을 시점샷으로 인식할 때는 잠시 신의 시선을 빌린 것마냥 우월감에 빠진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 아등바등 갈등하며 사는 지상의 삶이 부질없게 느껴진 적이 있다. 높이가 주는 거리감에 잠시 초월적 상태에 빠진 것이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 드론이 뜨면서 하이 앵글의 가치가 떨어졌다. 이제 하이 앵글은 TV 방송은 물론 유튜버의 투박한 영상물에서도 지배적 앵글이 되다 보니 희소성이 낮아졌다. 앵앵거리며 비행하는 드론 탓에 하이 앵글이 전하는 숭고미는 휘발되고 공중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식상하다.

아이러니한 것이 드론을 띄워 시야를 확장하려 안달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조감하는 데는 게으르다. 새가 높이 나는 목적은 멀리 보기 위함이다. 인간의 성숙도는 조감 능력에 비례한다. 새에 비유되어서 그렇지 땅에 발을 딛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여 공동체에 이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윤리다.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소란하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삐뚠 과거가 폭로된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이상할 게 하나 없는데도 인격과 능력에서 역대 최악의 후보들이라 아우성이다. 정말인가? 기억력 착오 아닐까?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희대의 ‘깜깜이 선거’라 조바심을 낸다. 세상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그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면 된다. 설령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오면 실망스럽겠지만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면 좋다. 내가 원하는 민주주의는 아닐지 몰라도 대통령의 전횡으로 흔들릴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성현께서 나무 한 그루의 디테일에 빠져 숲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했다. 시들어가는 나무 앞에서 원인을 알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사람이 우연히 숲을 조감한다. 크게 자란 나무들 탓에 빛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함께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이치다.

공동체에 이로운 것이 내게 이롭다는, 윤리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전망 속에 치러지는 대선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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