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레이건 부부와 점쟁이 조앤 퀴글리 기사가 실린 피플지 표지.

레이건 부부와 점쟁이 조앤 퀴글리 기사가 실린 피플지 표지.

드골 공항에서 미국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를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알은체했으나 굳은 얼굴로 사람을 잘못 봤다고 시치미를 뗐다. 믿지 않는 내게 비슷하게 생겼죠?라며 빙긋 웃었다. 유명 연기자다운 능청이었다. 성가신 팬을 떨쳐내는 그녀만의 방책이었으리라.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유명 연예인에게 팬은 존립 기반이면서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멀리서 응원하고 지지해주면 좋으련만 극렬 팬들은 사생활을 위협한다. 성에 차지 않으면 차갑게 돌아설 뿐 아니라 저주까지 한다. ‘얼굴을 파는’ 사람이 내야 하는 세금이다.

조디 포스터는 유명세를 호되게 치른 배우다. 1976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택시 드라이버>의 어린 매춘부 역을 따내기 위해 브룩 실즈, 미셸 파이퍼, 킴 베이신저 등 유망주들을 포함해 250명이 넘게 지원했다. 감독이 14세 조디 포스터를 낙점하면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 정점의 명작 <택시 드라이버>로 배우 조디 포스터의 화려한 영화 경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간 조디 포스터에게는 악몽이 된 영화다.

존 힝클리 주니어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아이리스’로 열연한 조디 포스터에 빠진다. 수차례 열애 편지를 보냈고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대학생이 된 조디 포스터의 대학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스토킹했다. 존 힝클리 주니어는 뜻대로 되지 않자 해괴한 망상을 현실화한다.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이 대선 후보를 암살하려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고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저격했다.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이 광팬에 살해당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어진 만행이었다. 조디 포스터는 충격에 빠져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다.

조디 포스터 이상으로 충격에 빠진 사람은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이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70여일 만에 서거할 뻔한 피격 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점성가의 정확한 예측도 한몫했을 것이다. 점성가 조앤 퀴글리는 1981년 3월30일을 특정하며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 예고한 바 있다. 다행히 레이건 대통령은 치명상을 입지 않아 빠르게 회복했으나 후유증으로 죽기 전까지 고생했다.

불안은 영혼을 좀먹는다. 케네디 피살과 공화당 대통령 포드를 노린 암살 시도가 두 번이나 있었고 여배우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국가 수뇌에 총질을 해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 부인은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낸시 레이건 여사의 간곡한 요청에 조앤 퀴글리가 백악관에 입성했다.

퀴글리는 회고록에서 때로는 하루 3시간에서 10시간까지 레이건 부부와 국정 중대사를 놓고 의논했다고 술회했다. 대통령 전용기 이륙 일정이나 수술 날짜부터 크게는 정상회담 택일까지 점쳐줬다. 놀라운 것은 레이건 대통령에게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지 말고,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유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한다.

퀴글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소련에 대한 레이건의 관점을 재정립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한 셈이다. 노벨 평화상은 고르바초프가 아닌 퀴글리가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었을지.

퀴글리의 주장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백악관에서 7년간 지냈다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 부인은 퀴글리에게 대통령 부부가 점성술에 의지한 사실을 언론에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불확실성이 높고 운이 크게 작용하는 정치계에선 앞일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믿을 만한 무언가를 찾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점쟁이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했겠는가? 퀴글리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대통령이 그럴 리가 없다. 대통령의 의식은 국민에 대한 공감이 지배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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