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이선호, 김지은, 김잔디, 변희수. 지난주 금요일 사전투표를 하러 가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을 곱씹었다. 나는 지난 5년을 이들의 이름으로 기억한다. 거대양당이 아니라 여전히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이들의 이름이 보여줬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난 김용균씨,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유명을 달리한 이선호씨.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을 미뤘고, 적용범위를 좁히고 처벌수위를 낮추는 등 누더기로 만들었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지은씨, 2020년 7월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을 고발한 김잔디씨(가명).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2차 가해를 일삼았다.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강제전역 처분을 받고 2021년 2월 극단적 선택을 한 변희수씨.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뤘다.
민주당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누더기로 만들 때 온전한 법을 요구하고, 민주당이 2차 가해를 일삼을 때 피해자의 편에 서 있었으며,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을 ‘나중’으로 미룰 때 즉각 입법을 요구한 정치세력은 모두 진보정당이었다. 그 이름들을 떠올리자 내 한 표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하지만 여론조사들에 나타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처참하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가정한 3자 대결 조사에서는 7%까지 나왔다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다. 내일이 지나면 정의당은 성적표를 받을 텐데, 예상 이상의 성적을 받아도 환호할 일은 아닐 것 같다. ‘샤이 유권자’가 있었던 것이라면 어쩌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는지를 성찰할 일이고, 보수 단일화의 영향이라면 자력으로 얻은 표가 아니므로 초연할 일이다.
선거가 끝나면 정의당은 다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심상정은 이미 나름의 답을 내놨다. 지난 1월 중순, 칩거 끝에 돌아온 심상정은 “지워진 이름들을 심상정의 마이크로 더 크게 그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남탓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정말로 그렇게 했다. 반지하방에 사는 청년, 새벽에 퇴근하는 물류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산재 유가족, 특성화고 졸업생, 여성 개발자, 여성 경찰, 코로나 전담병원 간호사들을 쉴 새 없이 만나고 다녔다. 토론회에서는 이동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과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유가족의 요구를 그의 목소리로 전했다. 50일 가까이 심상정은 ‘지워진 사람들’의 곁에 선다는 기조를 최대한으로 유지했다.
안타깝게도 여론조사만 보면 이 기조는 별다른 효과를 못 냈다. 칩거 이전과 이후 심상정의 지지율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이 쓰렸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사표론’으로 대표되는 선거 구도의 문제로 ‘지워진 사람들’이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일 수 있다. 이들이 자기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에 더 가치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소수 진보정당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이다.
남탓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다른 요인을 살펴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설득하기에 50일은 너무 짧았다. 유권자들은 공약만 보지 않고, 인물만 보지도 않는다. 그 정치가 지나온 궤적을 함께 본다. 그 궤적은 상징성 있는 사람 몇 명 영입한다거나 무엇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장 어려울 때 그의 곁에 있어주는 데서 생긴다.
앞으로의 5년은 정의당이 궤적을 다시 쌓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50일은 효과가 없었다고 실망하기엔 짧은 시간이다. 심상정이 50일간 한 일을 정의당이 앞으로 5년간 꾸준히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난 50일의 행보도 무의미한 것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