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도를 걸어야 할 때

우리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후 이번 20대까지 선거를 통해 네 번 정치세력 교체, 여섯 번 지도자 교체를 해냈다.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가 결과에 불복하고 의회 난입사건을 일으킨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선거문화와 민주주의 공고화는 자랑할 만하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그러나 우리는 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반칙과 변칙의 민낯을 그대로 보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반칙과 변칙이 허용됐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부와 명성, 권력을 쌓았다. 정치인들의 그런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치러진 이번 대선은 축제가 아니라 고통이었다. 우리 모두 이번 대선이 드러낸 세 가지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앞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구조적 분열 투표, 정책대결의 진검승부 부재, 악성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첫째, 이번 대선 투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분열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거대 기득권 양당체제의 분열적 폐해,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투표, 20대 남성들과 여성들의 상반된 젠더 투표에서 그러했다. 우선 정의당 후보의 득표가 매우 적은 데서도 보듯이, 기득권 양당체제의 거대한 흡인력은 유권자들이 자기가 속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다른 계층의 대변자를 지지하는 ‘계급배반투표’를 하게 했으며, 선거 막바지 후보 단일화를 낳았다. 거대 양당체제의 이러한 독점적이고 분열적인 폐해는 다당제와 결선투표제 없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호남과 영남의 몰표 투표도 분열적 지역주의 요소들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온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호남의 ‘전략투표’도, 물론 역사적 배경이 있고 또 거대 기득권 양당체제 폐해와 연결돼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분열적 지역주의 지속이라는 역작용을 낳고 있음을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20대 남녀들의 상반된 젠더 투표도,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젠더 관련 문제들을 우리 사회가 그동안 지나치게 무시해오는 우를 범하더니, 갑자기 일부 성숙지 못한 정치인들이 선거 득표전략 차원에서 남녀를 갈라치기한 결과이다. 우리의 미래인 20대는 정파적인 이익을 위해 남녀 편가르기 할 대상이 아니다.

둘째, 이번 대선은 정책대결의 진검승부가 없었던 선거였다. 우리에게는 양극화와 각종 분열로 인해 패자를 양산해내는 사회구조와 정치문화를 바꾸는 비전과 정책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필요했다. 따라서 대선이 미래지향적이고 문제해결적인 정책의 진검승부의 장이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거대 양당 후보자들과 가족들의 요란한 스캔들만이 난무했을 뿐, 본격 정책토론이 실종된 선거였다. 우리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선거를 중심으로 한 형식주의적 공고화임을 말해준다.

셋째, 이번 선거는 악성 포퓰리즘의 폐해를 잘 보여주었다. 후보자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설명과 증명보다는 예산도 뒷받침되지 않는 선심성 공약을 최대치로 부풀려 마치 한탕주의식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호도했다. 이는 선거와 정치에 대한 신뢰성 훼손으로 이어졌다.

이제 대선은 끝났다. ‘혼돈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 보기’이다. 우리 모두 더 나은 미래의 비전과 희망, 약속을 현재로 가져와 현재를 재구성하여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반칙과 변칙의 길을 버리고 이제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할 때다.

만일 우리가 이번 대선이 보여준 각종 분열, 정책토론의 부재, 악성 포퓰리즘 등을 끊어내지 못하면, 정치판이 문제해결을 위한 실용주의 대신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의 무대가 될 위험이 상존한다.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의 폐해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에는 새로운 문화전쟁과 유라시아 제국 건설을 주장하는 알렉산더 두긴과 같은 이데올로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경우에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 뉴라이트 이념의 폐해를 겪었다.

인류가 축적한 지혜는 국내정치에서는 분열이 아닌 통합, 대외정치에서는 전쟁이 아닌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내하면서 타협과 양보를 통해 이룩하는 통합과 평화는 이데올로기 영역이 아니다. 용서와 화해, 치유와 연대, 통합과 협치, 생명과 평화는 인류의 지혜이자 정치의 정답이며,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정책목표들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당선 제일성으로 개혁과 통합을 약속했다.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합과 평화 정신으로 우리나라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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