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말하는 그 입을 닫으시라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타기 투쟁을 두고 비문명적이라고 일갈한 데 대해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애당초 문명적으로 살지 못해 그렇다고 대꾸했다. 내가 나로 온전히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은 세상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말하는 방식과 행색을 지적하며 다수의 문법을 지키라고 유세를 떤다. 누가 문명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귀한 시간을 쪼개 당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일상에 개입하는 줄 아는가. 그것이 어째서 소수자의 책임으로 가둬져야 하는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투쟁은 매번 과격한 방식만을 택하지도 않았다. 사회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미뤄지고 보이지 않는 취급당하기 급급했을 뿐. 하루 이틀이 아니고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비영리법인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서울시는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해괴한 주장은 헌법 36조 1항을 근거 삼는다. 혼인과 가족생활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가 이를 보장한다는 내용에 저들은 ‘양성’을 기어코 남녀로 전제한다. 옹졸한 해석은 ‘양성’을 두 개인의 평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당위를 저버린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 제11조 또한 내팽개친다. 문명을 독점하려 문명의 가치를 팽개치는 이는 누구인가.

또 하나, 경찰청은 ‘경찰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했다. 그리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다. 국회에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내용에 맞춰 성별정체성과 고용형태, 임신·출산, 출신국가, 출신민족, 건강상태를 항목에 추가하라는 것이었다. 신체 수색과 검증 대상이 성소수자일 때 고려해달라고 의견을 보탰고 외국인과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의사소통 조력을 의무화할 것을, 노인과 성소수자에 대해 구체적인 보호조항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응당 문명사회라면 성원의 특정한 면면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경찰청은 개인의 권리마저 묵살한다.

새삼 ‘문명’의 뜻을 찾아보았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기술적·사회구조적인 발전을 일컫지만 정작 현실은 어떤가. 문명의 언어는 제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하여 언제고 나중을 말한다. 하지만 기약 없는 약속의 실상은 발전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을 비문명의 범주로, 불편을 끼치는 군집으로, 반갑지 않은 볼거리로 몰아세우며 국가의 무책임을 전가한다. 결국 지금 당장이 절실한 이들은 지하철을 점거하고 국회 앞에 나와 단식을 불사하기에 이르렀다. 비문명적 투쟁방식이라고? 최대다수에게 불편을 끼치지 말라고? 다시 묻는다. 누가 사회를 비문명적으로 몰아세우는가. 누가 문명을 핑계로 야만을 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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