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말리는 공항이라고요?

박병률 경제부장

“시골 가는 거죠?”

서울에 거주하는 부산 출신들이 명절을 앞두고 종종 받는 질문이다. 인구 340만명, 제2의 도시, 세계 5대 항만은 ‘시골’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된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인천보다 인구가 더 많은 메트로폴리탄도, 인구 5만의 농촌도 모두 ‘시골’이다. 태어났더니 어쩌다 부산의 산부인과였던 나 역시도 이 질문을 비켜나지 못한다. 문득 25년 전 영국 자원봉사를 갔을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에 한 영국인은 “라오스, 캄보디아에 친구가 있다”고 자랑했다. 그들의 눈에 ‘파이스트 아시아’는 모두 같은 나라였다. 일본 빼고.

박병률 경제부장

박병률 경제부장

가덕신공항 건설 추진계획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날, 일부 중앙 언론들은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되나’라고 썼다. 한때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 불렸던 무안공항을 빗댄 표현이다. 가덕신공항의 경제성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다. 당초 7조원이면 지을 수 있다는 건설비용이 13조원으로 불어났다. 이것도 지금 얘기지 공사가 진행되다 보면 돈은 더 들어갈 수 있다. 만성적자로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부산시와 부산의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덕신공항을 ‘멸치 말리는 공항’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하다. 부산시가 예상하는 가덕신공항의 국제선 여객수요는 4604만명(2056년 기준)이다. 정부 전망치는 부산시 예상의 절반인 2336만명(2065년)이다. 보수적으로 예측한 정부 전망이 맞다고 친다면 연간 2336만명이 사용한다는 얘기다. 향후 가덕신공항에 김해공항의 국내선까지 이전되면 여객수요는 더 커진다. 2019년 이용률이 94%에 이른 김해공항은 1085억원의 흑자를 남겨 김포공항(673억원), 제주공항(730억원)을 넘어섰다. 김해공항의 흑자 배경에는 부산·울산·경남의 800만 인구가 있다. 단언컨대 가덕신공항은 무안공항, 울진공항, 양양공항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멸치 말리는 공항’이라 조롱했다면 악의적인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지한 거다. 진정 만성적자가 걱정이라면 이럴 때 쓰는 적절한 경제용어가 있다. ‘하얀 코끼리’다. ‘가덕신공항, 하얀 코끼리 될까’라고만 표현했어도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수도권 편중이 우려스럽다고, 지방 소멸이 우려스럽다고 모두들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정작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낯빛을 바꾼다. 경제성이 없다는 거다. 그러면서 숱한 실패의 사례를 끄집어낸다. 가덕신공항 논란의 기저에도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지방이 지방이기 때문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렇다. 1996년 돈 없고 영화배우 없고 제작사 없고 대형 상영관도 없는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연다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했다. 지금 부산국제영화제는 당해 연도 아시아 영화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엿봐야 하는 아시아 최고 영화제가 됐다.

중앙 언론의 기조가 대체적으로 ‘비효율’에 맞춰져 있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마찬가지다. 잘 안되는 곳도 있지만 그런 대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곳도 있다. 얼마 전 만난 부산대의 한 교수는 금융공공기관 부산 이전 이후 대학의 체질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달 말 열리는 세계가스총회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있어서 유치가 가능했던 이 행사는 엑스코도 채우고, 국제행사 역량도 키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얘기다.

2020년 기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뒤로부터 대구, 부산, 광주 순이다. 지방거점도시라는 곳의 수준도 이렇다. 중앙에서는 “될 만한 안만 가져오면 얼마든지 돈을 주겠다”고 하지만 예산을 요청할 건덕지마저 없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기관이라도 지방에서는 변화를 위한 중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방에 투자했다가 돈낭비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 집중이 치러할 사회적 비용일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수도권 집중이 더 강화될수록 이런 비용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가덕신공항이 진짜로 멸치나 말리는 공항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더 두렵다. 한때 400만명을 넘봤던 부산 인구는 20년 넘게 줄어들고 있다. 가덕신공항에 멸치밖에 없다는 말은 지방 소멸이 현실화됐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그건 지방, 아니 한국의 악몽이다. 그런 상황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