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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경제 정책 중에는 좌우 입장과는 별로 상관없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매우 민감한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한국의 우파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특별히 더 그렇다. 한국에서 원전은 정치색이 별로 없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거의 개국공신급의 근본적 정책이 되었다. 원전을 찬성하지 않으면 이 정부에선 출세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좌우 구분이 거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이념 정책으로 몰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1년 전부터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로 할지 말지, 이번 총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원래 공무원은 정권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맡았던 공무원들이 정권교체 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정과제는 공무원들이 맡고 싶지 않은... -
정치와 기후세대 등장
더불어민주당 1호 영입인재 박지혜가 의정부갑 후보 경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했다. 기후 전문가란 게 영입 이유였는데 전문가 몫의 비례후보로 가지 않고 지역에 출마하게 되자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박지혜를 누가 알아? 상대 후보는 그 지역을 오랫동안 일궈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지역 실력자였다. 정상적인 계산이라면 박지혜가 아버지의 지역 후광을 받는 상대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 이 사건을 기후와 생태 문제를 투표의 중요 기준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전면적 신호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지만 일종의 유권자 운동으로서 이번 총선에 기후유권자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기후·생태 문제가 유의미하게 투표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포장지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그렇게 ‘모양내기’ 수준이었다.박지혜가 단수공천이 아니라 경선에 내밀렸을 때, 민주당 공천에서의 기후 문제는 역시나 포... -
신토건공화국, 지하화사업
최초의 여성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는 프랑스 사회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크리스마스 기간 코로나19 격리 때 서점을 필수 상업시설로 지정해달라는 논쟁을 했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파리는 패션 등 유행을 선도했는데 지금은 이달고 시장과 함께 도시 생태 논쟁을 주도하는 중이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파리 시내 주차비를 3배 정도 올리는 방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다. 내연차는 물론이고 전기차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파리는 외곽 순환도로의 제한 속도도 낮출 예정이다. 파리는 오는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자동차 운행이 불편한 방식으로 가는 게 파리가 생각하는 미래다.한국에선 지금 도로와 철도의 지하화가 유행이다. 여당 비대위원장은 물론, 야당 대표도 도로든 철도든 전부 지하로 넣겠다고 연일 총선 공약을 제시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없고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느... -
검사정권과 경제민주화
군사정권은 개발도상국에서 군인이 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는 엘리트 집단인 경우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직업이 국가를 장악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도 두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정당성이 문제가 되니, 공작정치와 언론장악이 중요했다.검사정권이라는 용어가 지금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개념일까? 단순히 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법무부 장관을 하던 한동훈이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지금, 생소했던 검사정권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검사정권의 극명한 폐해로 볼 수 있는 두 장면을 떠올린다.첫 장면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올해만 해도 2023년 대비 4조6000억원을 삭감했다. 군사정권 때에도 카이스트를 설립하는 등, 개도국 중 공격적 연구·개발을 한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 연구 현장에선 실험을 담당하는 실무 연구진들의 해고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공공연... -
진짜 ‘서울의 봄’
며칠 전에 초등학생인 큰애와 극장에 가서 <서울의 봄>을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셋업 과정이나 주인공의 고진감래 등 덜 흥미롭거나 때로는 지겨운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서울의 봄>에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 뽀로로 캐릭터를 만들 때, 뭘 더하는 게 아니라 뭘 뺄지가 주된 디자인 포인트였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이태신 부인이 나왔을 때, 그녀의 슬픈 후일담이 좀 나올까 했었는데, 일절 없었다. 큰물이 흘러가는데 걸리적거리는 소위 ‘이물질’이 거의 없는 편집이 기가 막혔다. 장면 전환도 빠르고, 대사들도 길게 안 준다. 생각할 틈이 없이 숨가쁘게 장면들이 전환되었다. 얘기는 ‘올드’하더라도 편집만큼은 모던했다.청년들 공정 질문에 엇갈린 성패영화 보고 며칠이 지났는데, 몇 장면이 계속 생각이 났다.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감정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같이 간 큰애도 재미있게 봤는지, 영화... -
서울, 나눌 것인가 키울 것인가
1991년 한국행정학회의 한국행정학보에는 조일홍의 ‘수도권 자치구역 개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조일홍은 서울의 여러 자치구들이 서울시에서 떨어져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다. “자치구가 좀 더 강력한 자치권을 요구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로의 독립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당시 정부 기구인 행정개혁위원회는 서울의 한가운데인 사대문 안만 서울특별시로 하고, 다른 곳은 인구 300만 정도의 독립도시로 분할하자는 프랑스 파리 스타일을 검토하고 있었다. 조일홍이 검토한 또 다른 안은 구 단위로 서울을 분할하여 25개의 도시로 작게 나누는 것이었다. 논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치구역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59.3%였고, 필요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0.7%였다. 서울시 거주자의 57%, 서울 인근지역 거주자의 77%가 자치구역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이런 학술적 논의는 대통령 후보 시절의 김영삼 캠프 내에서 ... -
연구개발과 진보 정치
한국은 ‘공업입국’ 정신으로 지금의 나라를 만들었다. 많은 논란에도 박정희의 확실한 공적은 카이스트를 비롯해 공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주변 장치도 같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후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기술자를 우대하고, 기술이 모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한국에서 최초의 인터넷 회선실험을 한 사람은 카이스트 교수였던 전길남이었다. 그는 일본 교포였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나사(NASA)에서 일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박정희 정권의 기술 우대 정책 때문이었다. 결국 1982년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전길남의 제자들이 삼보컴퓨터와 넥슨, 엑스엘게임즈(리니지 개발), 아이네트 등을 창업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한국이 그냥 IT 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WTO가 출범하면서 금융을 통해 수출에 주던 지원금은 금지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수출 지원을 연구·개발 지원으로 전환하였다. 그렇게 10... -
마이웨이 대통령과 홍범도 총선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상원과 하원이 있는 게 아니어서, 지역구든 비례든 한꺼번에 바뀐다. 일본처럼 총리가 수시로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르는 것도 아니어서, 한국 총선은 예외 없이 4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5년의 대통령 임기와 4년의 국회의원 임기가 묘하게 교차하면서 때때로 중간평가 역할을 하게 된다. 내년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이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마이웨이’ 행보가 두드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전면화한 이념 논쟁을 집권여당이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공천을 받아야 하는 여당 의원들이 특별히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 어쨌든 홍범도라는 역사적 인물의 공산당 가입 문제가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의 1번 의제가 되었다. 홍범도에 대한 평가는 좌우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국을 뒤흔드는 맨 앞의 의제가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건... -
기재부, 이러다 우리 다 죽어!
윤석열 정부가 못하는 게 많지만 그중에서 제일 못하는 게 예산 관리 아닐까 한다. 제대로 쓰는 돈도 없는데, 세수에 문제가 생겨서 여기저기 칼질하느라고 난리도 아니다. 칼자루를 쥔 기획재정부의 칼질이 전례 없이 투박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국가 설계 및 운영 전반에 경제만 아는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완장질을 하는 중이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별명이 칼잡이였다더니, 요즘 경제 당국이 칼잡이처럼 예산을 난도질하고 있다. 이번에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크게 떼돈 버는 일도 아닌 연구·개발(R&D)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들은 단지 정부 연구를 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카르텔’이 되었다. 앞에서는 예산 당국이 칼질을 하고, 뒤에서는 감사 당국이 몇년 치 영수증을 탈탈 털며 실정법을 들이대고 있다. 만약 어느 엔지니어가 백지에 가까운 영수증을 제출하면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처럼 “잉크가 휘발돼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 -
상후하박 경제, 윤석열 경제가 가는 길
조선은 역사에서 매우 길게 버텼던 나라다. 일반적인 경제사의 법칙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특별한 국가였다. 중세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국가의 특징이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분석도 잘 되지 않는다. 지역의 영주가 농노들을 거느리고, 이들의 연합 정권이 왕조를 만드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농업 노예, 농노가 존재하는 게 이 시스템의 특징인데, 전형적인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에는 노비는 존재했지만, 농노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축 생산 인구들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 힘이 조선을 강하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아래쪽에 후하게 해주는 하후상박 구조다. 그 안정성이 임진왜란 이후 붕괴되면서 양반들의 면세가 시스템에 부담을 강하게 주었다. 돈을 벌어 양반이 되는 사람이 늘었고, 상후하박 경제가 되었다. 결국 망했다.많은 국가들은 하후상박, 아래쪽에 후하고 위쪽에 박한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한다. 맹자는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