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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히키코모리
2007년 <88만원 세대>를 준비하면서 꼭 다루고 싶었는데, 못한 얘기가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문제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가 몇명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일본은 이 문제를 풀려고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일본에서는 청년 히키코모리도 나이를 먹어서 ‘8050’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되었다. 80대 부모가 50대 자식을 돌보는 현상을 얘기한다. 일본 정부 발표로는 히키코모리가 약 146만명이다. 40세 이전에는 남성이 더 많다가, 40대 이후로는 여성이 약간 더 많다. 성별 차이가 크지는 않다.서울이나 인천에서 은둔형 외톨이 현황 조사를 하는데, 법적인 근거가 약해 정확한 통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4년마다 하는 인구 총조사에 통합해서 하면 좀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논의가 가지는 않았다. 광주시나 은평구 등 지자체에서 통합지원센터 등 뭔가 도... -
상속세 개편과 상속자 자본주의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 격차라는 게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지적하는 얘기다. 다양한 복지정책이 강화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 격차는 좀 완화되었지만, 자산 격차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많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상위 50%가 대부분의 자산을 가지고 있고, 하위 50%는 2~3%가량의 자산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집을 가지고 있는 가계가 55~60%가량이라서 현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몇년 전 청년들에게 열풍이었던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이런 자산 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수저 같은 직관적인 표현을 조금 개념적으로 가다듬으면 ‘세습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된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상속자 자본주의’가 된다. 뭐라도 상속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출산을 하고, 상속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상속자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3포·4포를 ... -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감상문
2018년 방영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뒤늦게 보았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법원을 맞들기 위한 초임 판사들의 법원 내 직장 투쟁기였다. 울 장면도 아닌데, 눈물이 몇번 났다. 국민참여재판이 사실상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대반전을 보면서도 울었다. 노무현·문재인, 한동안 변호사들의 시대였고, 윤석열 이후 검사들의 시대가 왔다. 변호사나 검사가 주인공이든 빌런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다. 그에 비해 판사, 특히 법원 이야기는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아주 재밌게 보았다.한국은 상명하복의 질서, 즉 군대식 질서로 공화국을 만들었다.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 시절에 태어나 장년이 된 사람들과 날 때부터 선진국 국민이었던 신입 직원들이 정부나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기업 여기저기서 문화적으로 부딪치게 되었다. 게다가 좋든 싫든, 사회적으로 탈군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면서, 군사 문화와 탈군사 문화가 충돌하게 되... -
종합부동산세, 어찌할 것인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경제학자가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자산 불평등이 최근에 매우 심각해졌다는 사실이다. 임금 불평등은 여러 가지 복지 장치 등을 통해서 최근에 약간은 해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자산 불평등은 21세기 자본주의에서 거의 제어되지 않았다. 상위 50%가 전체 자산의 97~98% 정도를 보유한다. 보통은 상위 1% 혹은 10% 아니면 20%에 집중된 부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산의 경우는 상위 50%가 기준선이다.정말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이후로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마치 황금률처럼 55~60% 사이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 새로 집을 사는 동안 누군가는 망해서 집을 팔게 된다. 그 비율이 50년째 거의 같다. IT 업계 등 일부의 슈퍼리치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의 많은 불평등은 집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부자의 ... -
인권 보수의 등장은 언제일까?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여당이 서울시에서 절대다수가 되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집 큰 어린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게 왜 폐지됐는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애초에 이런 기본적인 인권 보호는 지자체의 조례로 넘길 게 아니라 헌법에 들어가고, 기본법을 만들었어야 할 일이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니, 지자체 의회에서 임의로 폐지해도 절차상 방법이 없다. 인권조례 폐지 사건은 아마 22대 국회에서 정식으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한때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학생인권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까가 절차적으로 남는 쟁점일 것이다. 인권과 같은 선진국 주제는 잠시는 몰라도, 완전히 뒤로 가기는 어렵다.이는 절차상의 이야기이고, 기어코 학생인권조... -
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경제 정책 중에는 좌우 입장과는 별로 상관없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매우 민감한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한국의 우파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특별히 더 그렇다. 한국에서 원전은 정치색이 별로 없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거의 개국공신급의 근본적 정책이 되었다. 원전을 찬성하지 않으면 이 정부에선 출세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좌우 구분이 거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이념 정책으로 몰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1년 전부터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로 할지 말지, 이번 총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원래 공무원은 정권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맡았던 공무원들이 정권교체 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정과제는 공무원들이 맡고 싶지 않은... -
정치와 기후세대 등장
더불어민주당 1호 영입인재 박지혜가 의정부갑 후보 경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했다. 기후 전문가란 게 영입 이유였는데 전문가 몫의 비례후보로 가지 않고 지역에 출마하게 되자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박지혜를 누가 알아? 상대 후보는 그 지역을 오랫동안 일궈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지역 실력자였다. 정상적인 계산이라면 박지혜가 아버지의 지역 후광을 받는 상대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 이 사건을 기후와 생태 문제를 투표의 중요 기준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전면적 신호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지만 일종의 유권자 운동으로서 이번 총선에 기후유권자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기후·생태 문제가 유의미하게 투표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포장지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그렇게 ‘모양내기’ 수준이었다.박지혜가 단수공천이 아니라 경선에 내밀렸을 때, 민주당 공천에서의 기후 문제는 역시나 포... -
신토건공화국, 지하화사업
최초의 여성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는 프랑스 사회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크리스마스 기간 코로나19 격리 때 서점을 필수 상업시설로 지정해달라는 논쟁을 했던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파리는 패션 등 유행을 선도했는데 지금은 이달고 시장과 함께 도시 생태 논쟁을 주도하는 중이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파리 시내 주차비를 3배 정도 올리는 방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것이다. 내연차는 물론이고 전기차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파리는 외곽 순환도로의 제한 속도도 낮출 예정이다. 파리는 오는 7월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자동차 운행이 불편한 방식으로 가는 게 파리가 생각하는 미래다.한국에선 지금 도로와 철도의 지하화가 유행이다. 여당 비대위원장은 물론, 야당 대표도 도로든 철도든 전부 지하로 넣겠다고 연일 총선 공약을 제시한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없고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할 수 있느... -
검사정권과 경제민주화
군사정권은 개발도상국에서 군인이 상대적으로 교육을 잘 받는 엘리트 집단인 경우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직업이 국가를 장악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도 두 번의 쿠데타가 있었다. 정당성이 문제가 되니, 공작정치와 언론장악이 중요했다.검사정권이라는 용어가 지금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개념일까? 단순히 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법무부 장관을 하던 한동훈이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지금, 생소했던 검사정권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검사정권의 극명한 폐해로 볼 수 있는 두 장면을 떠올린다.첫 장면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다. 올해만 해도 2023년 대비 4조6000억원을 삭감했다. 군사정권 때에도 카이스트를 설립하는 등, 개도국 중 공격적 연구·개발을 한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 연구 현장에선 실험을 담당하는 실무 연구진들의 해고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공공연... -
진짜 ‘서울의 봄’
며칠 전에 초등학생인 큰애와 극장에 가서 <서울의 봄>을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셋업 과정이나 주인공의 고진감래 등 덜 흥미롭거나 때로는 지겨운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서울의 봄>에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 뽀로로 캐릭터를 만들 때, 뭘 더하는 게 아니라 뭘 뺄지가 주된 디자인 포인트였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이태신 부인이 나왔을 때, 그녀의 슬픈 후일담이 좀 나올까 했었는데, 일절 없었다. 큰물이 흘러가는데 걸리적거리는 소위 ‘이물질’이 거의 없는 편집이 기가 막혔다. 장면 전환도 빠르고, 대사들도 길게 안 준다. 생각할 틈이 없이 숨가쁘게 장면들이 전환되었다. 얘기는 ‘올드’하더라도 편집만큼은 모던했다.청년들 공정 질문에 엇갈린 성패영화 보고 며칠이 지났는데, 몇 장면이 계속 생각이 났다.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감정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같이 간 큰애도 재미있게 봤는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