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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에 대하여, 김상욱
김상욱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가 1차 탄핵 때 패딩 점퍼를 입고 헐떡이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올 때 그런 사람 한 명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반대 투표를 했다고 밝혔다. 2차 탄핵 때 탄핵을 찬성하며 1인 시위를 할 때, 그가 한 얘기보다는 그를 나무라던 사람들의 말이 더 귀에 들어왔다. 말 참 사납게 한다고 생각했다.“극우라고 하는 것은, 전체주의 그리고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것이 극우잖습니까? 어떻게 보면 보수와 극우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김상욱의 한 방송 인터뷰를 보면서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이나 논리가 특별해선 아니다. 톤 앤드 매너라고도 부르는 말하는 스타일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친위 쿠데타와 탄핵 표결 과정에서 나도 방송과 유튜브를 많이 봤다. 사람들은 화가 많이 났고, 때로는 신랄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문제점을 파고들어갔다. 물론 나도 이런 걸 재밌게 봤다. 입장이 같으면 그런 말들이... -
통상 총리, 유임을 건의함
트럼프는 ‘관세맨’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관세에 진심이다. 기존 통상 질서에서 트럼프가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부가하는 관세는 ‘보복 관세’로 분류된다. 이런 일방적 조치가 어떻게 가능할까? 또 이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크게 보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즈음하여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렸던 세계화의 종언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의 의미는 미국의 노동자들이 20년 가까이 진행된 세계화에서 얻은 게 별로 없다고 하는 불만의 폭발이라 할 수 있다.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와 함께 과거의 고립주의 노선으로 복귀했고, 민주당은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 선거에서 결국 고립주의가 이겼다.최근 1934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상호무역협정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제3국을 경유하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 부가 권한을 주었다. 이게 중요한가? 그렇다. 이 권한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질서를 규정하는 가트(GATT) ... -
금융실명제와 금융투자소득세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금융투자소득세를 반대할 때, 그가 좋은 검사였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퍼펙트 스톰’을 언급할 때, 그의 주변에 보수라도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새로 도입할 수 있는 조세는 없다. 환경세나 탄소세 등 앞으로 논의해야 하는 미래형 조세도 많다. 경기 좋을 때만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자는 것, 경제학에 그런 이론은 없다.다시 30년 걸린 금투세 도입 기회내가 생각하는 국민경제의 기본은 월급 받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과세체계다. ‘유리 지갑’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이게 조세체계 기본이다. 튼튼한 국민경제는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이 집도 사고 적당한 행복을 누리면서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경제다. 1인당 국민소득 상위권에 있는 스위스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게 기본이다. 물론 우리는 점점 더 그 상태... -
10조5천억짜리 수의계약?
우리는 지금 출생아 수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장기간 계속 줄어드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가 결국 맞게 된 21세기 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위기가 되었다. 중국, 북한도 최근 저출생으로 난리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도 그래”, 그렇게 그냥 넘어가기에는 한국의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출생아 수가 줄면 균형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늘고, 복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켜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생아 수가 줄면, 약한 고리부터 위기가 온다. 지방 소멸 현상이 생겨난다. 그럴수록 지방 경제 회생이라는 목표로 더욱더 인프라와 토건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특히 지방 토호들이 지역 정치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중남미와 일본 등에서 이런 경향성이 강하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과 고령화의 길을 간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딱 이렇게 갔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다가 나중... -
우리 안의 히키코모리
2007년 <88만원 세대>를 준비하면서 꼭 다루고 싶었는데, 못한 얘기가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문제였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지금도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가 몇명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일본은 이 문제를 풀려고 많이 고민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일본에서는 청년 히키코모리도 나이를 먹어서 ‘8050’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되었다. 80대 부모가 50대 자식을 돌보는 현상을 얘기한다. 일본 정부 발표로는 히키코모리가 약 146만명이다. 40세 이전에는 남성이 더 많다가, 40대 이후로는 여성이 약간 더 많다. 성별 차이가 크지는 않다.서울이나 인천에서 은둔형 외톨이 현황 조사를 하는데, 법적인 근거가 약해 정확한 통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4년마다 하는 인구 총조사에 통합해서 하면 좀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논의가 가지는 않았다. 광주시나 은평구 등 지자체에서 통합지원센터 등 뭔가 도... -
상속세 개편과 상속자 자본주의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 격차라는 게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지적하는 얘기다. 다양한 복지정책이 강화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 격차는 좀 완화되었지만, 자산 격차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많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상위 50%가 대부분의 자산을 가지고 있고, 하위 50%는 2~3%가량의 자산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집을 가지고 있는 가계가 55~60%가량이라서 현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몇년 전 청년들에게 열풍이었던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이런 자산 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수저 같은 직관적인 표현을 조금 개념적으로 가다듬으면 ‘세습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된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상속자 자본주의’가 된다. 뭐라도 상속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출산을 하고, 상속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상속자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3포·4포를 ... -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감상문
2018년 방영한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뒤늦게 보았다.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법원을 맞들기 위한 초임 판사들의 법원 내 직장 투쟁기였다. 울 장면도 아닌데, 눈물이 몇번 났다. 국민참여재판이 사실상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대반전을 보면서도 울었다. 노무현·문재인, 한동안 변호사들의 시대였고, 윤석열 이후 검사들의 시대가 왔다. 변호사나 검사가 주인공이든 빌런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다. 그에 비해 판사, 특히 법원 이야기는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아주 재밌게 보았다.한국은 상명하복의 질서, 즉 군대식 질서로 공화국을 만들었다. 후진국 혹은 개발도상국 시절에 태어나 장년이 된 사람들과 날 때부터 선진국 국민이었던 신입 직원들이 정부나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기업 여기저기서 문화적으로 부딪치게 되었다. 게다가 좋든 싫든, 사회적으로 탈군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면서, 군사 문화와 탈군사 문화가 충돌하게 되... -
종합부동산세, 어찌할 것인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경제학자가 되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자산 불평등이 최근에 매우 심각해졌다는 사실이다. 임금 불평등은 여러 가지 복지 장치 등을 통해서 최근에 약간은 해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자산 불평등은 21세기 자본주의에서 거의 제어되지 않았다. 상위 50%가 전체 자산의 97~98% 정도를 보유한다. 보통은 상위 1% 혹은 10% 아니면 20%에 집중된 부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산의 경우는 상위 50%가 기준선이다.정말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이후로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마치 황금률처럼 55~60% 사이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 새로 집을 사는 동안 누군가는 망해서 집을 팔게 된다. 그 비율이 50년째 거의 같다. IT 업계 등 일부의 슈퍼리치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의 많은 불평등은 집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부자의 ... -
인권 보수의 등장은 언제일까?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여당이 서울시에서 절대다수가 되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집 큰 어린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게 왜 폐지됐는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애초에 이런 기본적인 인권 보호는 지자체의 조례로 넘길 게 아니라 헌법에 들어가고, 기본법을 만들었어야 할 일이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으니, 지자체 의회에서 임의로 폐지해도 절차상 방법이 없다. 인권조례 폐지 사건은 아마 22대 국회에서 정식으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한때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학생인권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까가 절차적으로 남는 쟁점일 것이다. 인권과 같은 선진국 주제는 잠시는 몰라도, 완전히 뒤로 가기는 어렵다.이는 절차상의 이야기이고, 기어코 학생인권조... -
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경제 정책 중에는 좌우 입장과는 별로 상관없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매우 민감한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한국의 우파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특별히 더 그렇다. 한국에서 원전은 정치색이 별로 없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거의 개국공신급의 근본적 정책이 되었다. 원전을 찬성하지 않으면 이 정부에선 출세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좌우 구분이 거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이념 정책으로 몰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1년 전부터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로 할지 말지, 이번 총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원래 공무원은 정권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맡았던 공무원들이 정권교체 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정과제는 공무원들이 맡고 싶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