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도서관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 삶이라는 도서관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 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송경동(1967~)

시인을, 아니 시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시 ‘잊지 못할 여섯 번의 헹가래’에 의하면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추모 행진”에서 서울 보신각사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대오를 틀고 경찰과 대치할 때였다. “방송차 지붕에 올라 마이크”를 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 속에 묻혀 진상규명을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송경동 시인, 선동하지 마세요”라는 경찰의 말에 시인인 줄 알았다. 이 시는 한 30년 사회운동 현장을 쫓아다닌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다소곳”하다.

현장의 목소리 대신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한 반성과 “조용히 돌아서는 일”의 성찰,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라는 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물녘 도서관”에서 느껴지는 성숙한 삶의 태도도 엿보인다. ‘말’은 현장에서 발화됐을 때 힘을 얻고, ‘문장’은 활자화됐을 때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 개인은 미약하지만, 광장에 모였을 때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꽂힌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시인에게 도서관은 기억을 기록하는 투쟁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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