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되는 국민과 검찰국가의 그림자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가다듬었다는 취임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는 시대적 사명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인 국민은 모두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유 시민과 함께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책임의식을 표출하였다. 제시된 시대적 사명은 국민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당연한 원칙의 확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맥락을 곱씹어보면 강조점이 주어지는 가닥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무엇보다 ‘자유’ 시민으로 규정한 국민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 ‘민주’ 시민성이 강조되어 왔던 문화를 고려하면 냉전시대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하는 취지를 다시 한번 되씹어보게 한다.

원래 시민은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그 자체로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시민은 스스로의 가치판단에 따라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의 공공복리를 도모하는 자율적 덕성을 갖추는 것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민주 시민과 자유 시민은 둘 다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성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민주와 자유를 수식어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 시민과 자유 시민은 그 헌법적 함의가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고 서로 호환될 수도 있다. 민주라는 수식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양심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자유라는 수식적 가치 또한 동료시민들 사이의 평등을 전제로 한 공동체의 다양한 생활영역에서의 자기결정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하였을까? 그 실마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해야 한다는 선언이나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에서 공통적으로 이전 정부의 성과를 계승보다는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러나는 정부는 국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강조하기 위해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전 정부의 무엇이 국민을 업신여긴 것일까? 도대체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취임사와 국정비전을 구체화한 국정과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뚜렷한 실마리 한 가지를 던져준다.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가 자유 시민의 주인됨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그 위기를 극복할 책임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자유 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새 대통령의 의지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지성주의에 물든, 자유 시민의 적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단정하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적 사명의 중심에 검찰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심층심리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새 대통령의 자유 시민론은 선거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범죄자로 단정하는 언사로, 새 정부의 인사과정에서 검찰 출신을 전방위적으로 배치하는 용인술로, 형사사법 개혁으로 포장된 국정과제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검찰 중심 통치체제의 구축으로 귀결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 독립 예산 편성, 검경 수사권 재조정, 공수처 정상화로 세분화된 국정과제는 자유 시민인 국민의 보호를 명분으로 속성상 국민을 범죄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법집행기관인 검찰 중심의 지배구조 구축에 집중되고 있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의 정치화를 초래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법집행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 행사의 투명성과 헌법합치성이 관건이지 폐지가 대안일 수 없다. 법무부의 한 외청에 불과한 검찰의 예산편성과 배정을 대검에 이관하는 발상도 법률상 행정기관의 위상을 침소봉대하고 국가재정법 체제의 기본을 흔드는 발상이다. 국회와 대법원 등 헌법상 독립기관도 예산과 관련하여 정부의 통제를 받게 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원칙인데 검찰이 헌법상 독립기관에 준하는 지위를 인정받거나 국회의 직접 통제만을 받는다는 발상이야말로 초헌법적 검찰특권주의의 극치다. 검찰권의 분권화는 효율성보다는 인권보호를 우선하는 민주공화제의 핵심적 과제인데 그 취지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수사권 재조정이나 공수처 무력화는 오랜 민주화의 성취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축제 분위기여야 할 새 대통령의 취임이 자유 시민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소비하고 국민 중심 공화국을 검찰국가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진정한 주인들이 긴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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