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의 아이러니] 루틴이 삶을 구한다

긍정적인 루틴들이 체화되면
고난 겪더라도 회복탄력성 생겨

혹시 삶이 답답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에게 맞는 루틴 계발하시라
당신 삶에 새 경지가 열릴 수도

루틴(routine)에는 여러 뜻이 있는데, ‘일상 속에서 규칙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이라는 뜻도 있다. 세수, 양치질이 좋은 예다. 도시의 깔끔한 사람들이라면 대개 매일 샤워할 것이다. 1999년에 킬리만자로에 등반을 간 적이 있다. 춥고 불편한 상황에서 굳이 아침마다 샤워하는 건 비합리적이었지만, 몸에 밴 루틴이라서 생략할 수가 없었다.

조광희 변호사

나는 어린 시절 서울 변두리의 하위 문화에 많이 노출되고 의지력이 부족한 탓인지,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쁜 루틴으로는 빈번한 음주, 흡연이 있었고, 누구나 좋은 루틴이라고 생각하는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어학공부 따위는 몸에 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독서가 일찍 몸에 배어서 삶에 큰 도움을 받았다.

청년 시절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나머지 절반은 그 전에 형성한 습관이 결정한다.” 서른이 되도록 독서 외에는 긍정적인 습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음주, 흡연, 게으름 같은 부정적인 습관과 싸우느라 의지력을 소모하는 처지였기에 나머지 인생이 어두워보였다. 다행히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좋은 루틴을 계발할 시간을 벌었다. 20년 전에 자전거 타기라는 루틴을 형성하면서 신체적 활력이 증가했고, 그것은 다른 여러 루틴을 만들 힘을 제공했다. 긍정적 루틴 형성의 가장 큰 저해 요소였던 흡연을 중단한 것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사이 내 희망사항은 과음을 포함한 두어 가지 길티플레저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다. 오십 몇 년을 살고도 아직 득도하지 못해 부끄럽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나사가 한두 개쯤 풀려 있기 마련이라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그래도 인생 초반의 두서없는 생활상에 비한다면 발전을 이루었다. 몸에 밴 루틴들을 무심히 밟아가다보면, 의지력을 소모하지 않고도 하루가 그럭저럭 흘러간다.

도움이 될까 하여 몇 가지 루틴을 소개한다. 새벽에 컴퓨터를 켜면 꼭 하는 루틴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window-swap.com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을 공유해준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무렵 만들어졌는데, 동시대 사람들의 시선으로 풍경을 같이 보고 있으면 묘한 안정감과 연대의식을 느낀다. 또 하나는 듀오링고라는 온라인 어학사이트다. 자신을 영어 사용자로 등록하면 수십 개 나라의 언어를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다. 진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초보자 수준에서 즐겁게 배울 수 있다. 은근히 중독성이 강한데, 내 경우는 오늘 기준으로 647일 연속으로 매일 한 세션 이상을 진행했다. 법륜 스님의 정토회 사이트에도 매일 접속한다. 스님이 그날 대중과 나눈 설법들을 사진과 텍스트로 볼 수 있고, 널리 알려진 ‘즉문즉설’이라는 코너도 거의 매일 업데이트된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불교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하여 큰 도움을 얻는다. 우리는 진리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는데, 사실 진리는 쉽고 단순하다. 아집에서 벗어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생명의 불꽃이 꺼지면 기꺼이 자연의 품에 안기면 된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후에는 짬이 나면 공원이나 거리를 한 시간가량 걷는다. 생각도 정리되고, 소화도 잘되며, 근력도 향상된다. 집에서 계속 보유할 책이 아니면 정기적으로 남산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반납하며, 주말이면 남산 같은 낮은 산에 오르거나 서울에 산재한 공원이나 고궁을 반드시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설거지는 언제나 내 몫이다. 성격상 개수대에 그릇이 쌓여 있는 것을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면 바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참으며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심한 마음으로 한다. 집도 깨끗해지고, 가족 사이에 눈치 볼 일도 없으며, 잠시 정신을 쉴 수 있어서 좋다. 강아지에게 밥을 줄 때에나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없을 때에는 스트레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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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루틴들이 체화되면, 힘든 시간을 겪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생긴다. 누구나 삶의 당면한 목표가 있을 것이다. 당장의 목표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지만, 삶을 긍정적 루틴으로 재구성하려는 부단한 노력도 중요하다. 지난 몇 년간 몇 권의 책과 각본을 썼는데, 생각해보면 루틴의 힘에 크게 빚졌다. 10년 전의 나는 그런 정열과 여력이 없었다.

혹시 삶이 답답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에게 맞는 루틴 계발을 권한다. 당신 삶의 새로운 경지가 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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