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 첫날

타이어에 낀 돌
세개를 빼냈습니다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하나는 멀리 날아갔습니다
반쯤 닳아버린 잔돌 두개를
민들레꽃 그늘에 가만 내려놓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왔겠지요
매끄럽게 닳은 돌의 배를 맞대주니
기어코 만난 연애 같습니다
바퀴가 생기기 전부터 오늘이 준비됐던 걸 알았다면
부서지고 망가지는 통한의 길을 고마워했을까요
오늘은 타이어에 낀 잔돌을 뽑아냈습니다
하지만 풀밭 어딘가로 날아간 나를
찾지 않기로 합니다 작디작아진 내가
질주밖에 모르던 오래된 나를 퉁겨내고
홀로 맞이하는 첫날이니까요
몸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상처투성이 돌을 빼내어
풀밭에 내려놓을 때마다 나는
첫사랑을 발명하니까요

이정록(1964~)

다들 자동차 바퀴나 신발 바닥에 박힌 돌 하나쯤 빼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빼내다 너무 깊이 박혀 기어코 연장통에서 드라이버를 가져와 낑낑대던, 힘 조절을 못해 돌을 멀리 튕기던 그런 경험 말이다. 타이어로선 돌이 이빨 사이에 낀 이물질 같겠지만, 졸지에 타이어에 낀 돌로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온 황당한 일일 것이다. 돌을 다 빼낸 시인은 흐르는 땀을 닦곤 “반쯤 닳은 잔돌 두개”의 배를 맞대보니 딱 맞는다. 천생연분이다.

바퀴에 낀 채 살아온 날들은 “부서지고 망가”졌지만, 그곳에서 짝을 찾았으니 “통한의 길”만은 아니다. 가난한 부부의 인생역정을 닮았다. 시인의 관심은 금방 “풀밭 어딘가로 날아간” 돌에 머문다. 짝을 만나지도 못한 채 그 험한 곳에서 오래 그들의 연애를 지켜보다가 드디어 고통과 질주를 멈춘 삶이다. 시인은 “풀밭 어딘가로 날아간” 작은 돌에 자신을 투영한다. 상처를 내려놓고 “홀로 맞이하는 첫날”, 마음이 평안해진다. 첫사랑 같은 삶이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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