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돈오리 비해피

소금기 없이 짐짐한 수육. 냄새만으로도 불콰해지는 홍어, 푹 짠 내가 스민 묵은지로 저녁을 걸게 얻어먹었어. 음식솜씨로 소문난 분이 마련한 전시 뒤풀이였다. 오래전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에 분개한 미대생들이 성조기가 찢긴 장면의 걸개그림을 그렸는데, 미국도 아닌 한국의 국가보안법으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 그림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것은 국내 처음이었는데, 그 한 사람이 바로 이상호 화백. 이후 고문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무려 5년 세월을 지냈다. 최근 고인이 되신 변호사 한승헌 샘이 이 청년 화가들을 구명하고 변호하는 데 굵은 도움을 주셨다. 병원에 지내면서 살살 마음을 다스리며 그렸던 스케치들과 신작들로 지난 한 달 내가 관장일을 보는 메이홀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삼합 뒤풀이도 행복했지만, 첫날 오프닝은 배나 달뜬 시민들의 잔치였다. 소는 비싸서 잘 못 먹고, 돼지 돈과 오리, 없으면 닭이라도 잡아 손님상을 보겠다며 달려든 시민들로 북새통이었다. 돈오리 비해피! 화가는 간만에 얼굴이 폈다. 춥다 춥다만 하면 벌벌 떨게 된다. 된다 좋다 하면서 비해피. 상처 많은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전시회였다.

뒤풀이 마치고 시장통 콩나물국밥과 순대를 포장해서 들고 들어왔다. 국밥은 내가 먹고 순대는 개들 부부 나눠 주려고. 가끔 ‘가댁질’을 하며 잔디밭을 운동장 삼아 거칠게 놀지만, 먹을 걸 가지고는 싸우지 않는 걸 보니 얘들은 천생연분이야. 개들은 서로를 뭐라고 부르며 사는 걸까? 부부가 서로를 부를 때 ‘하니, 달링, 자기야’ 하면서 느끼하게 서로를 부르는 이유는, 몇해 전부터 이름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라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서로들 이름으로 진 빚을 알고 살아가면 참 좋을 텐데. 우리는 누구나 사랑의 빚을 지며 살아간다. 먹는 것도 그래. ‘돈오리’의 희생으로 잔칫상을 봐. 따라지목숨이라도 지구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란 없어. 음식상 앞에서 합장이나 성호를 그으며 감사를 표해야 하는 까닭은 이 밖에도 많다. 하지만 배고픈데 길게 중얼거릴 필요까지는 없지. 식은 음식이란 무조건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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