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 오묘한 위치에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6·1 지방선거의 여파로 거대야당의 당내 권력투쟁과 여,야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의 대치로 본격적인 원 구성 협상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여의도에서 바라본 국회 주위로 빨간불이 켜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6·1 지방선거의 여파로 거대야당의 당내 권력투쟁과 여,야의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의 대치로 본격적인 원 구성 협상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여의도에서 바라본 국회 주위로 빨간불이 켜져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선거는 세상을 당겼다 놓는다. 활시위같이…. 세 숫자가 강렬했다. 뚝 떨어진 투표율 50.9%, 광역단체장 12 대 5, 김동연 경기지사의 0.15%포인트 차 역전극이다. 시간 순서가 주는 착시도 있을 게다. 경기도의 반전은 윤석열 정부를 긴장케 하고 거야의 새벽잠도 깨운 죽비(竹비)였다. 한 표 한 표가 모인 민심은 가차 없이 매섭고, 이번에도 오묘했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또 졌다. 아니, 이길 도리가 없었다. 관악·강북·금천(서울), 부천·안산·시흥·남양주(경기), 천안·아산(충남), 원주(강원)…. 민주당이 강했던 수도권·중원 도시들은 하나같이 투표율이 낮았다. 40대 투표율도 42.6%에 그쳤다. 전통적 우군들이 투표장에 갈 맛과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왜 포기했을까. 그들은 돌아올까.

시끄러운 게 낫다. 5년 만에 정권을 뺏겼으니, 큰 선거만 3연패했으니, 대선 뒤 지방선거까지 또 묻어뒀으니, 주류·비주류가 혼재한 당에서 쏟아질 얘기가 한두 굽이겠는가. 민주당의 정풍과 진보의 소용돌이는 늘 막다른 길에서 시작됐다. 꼭 4년 전이다. 2018년 6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은 ‘14 대 3’으로 압승한 지방선거에 대해 “한편으로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이라고 표했다. 참모들에게 유능함·도덕성·국민 섬기는 태도를 주문했고, 정부의 자만과 안일을 경계했다. 돌아간다면, 민주당의 복기도 그때부터지 싶다. 대통령의 말은 지켜졌는가. 부동산은 왜 무능했나. 정치·검찰 개혁의 냉온탕과 성비위는 왜 반복됐고, 53조원 초과세수는 어찌 몰랐는가. 그래서 ‘민주당 정부’였는가. 지방선거 참패는 이재명·이낙연·송영길 때문인가, 비대위 때문인가, 뒤에서 돌 던질 자격들은 있는가. 내일 해가 뜨지 않을 것처럼 문 걸어잠그고 밤새 싸워라. 총의를 모으고, 이견 있는 건 병렬로 부기하라. 침묵과 뒷담화와 남 탓보다 그게 좋다. 그러곤 한두 마디 구호·다짐이 아니라 무엇부터 어떻게 하겠는지, 제대로 된 반성문과 ‘뉴민주당’ 계획서를 내놓아야 한다. 8·27 전대가 그것이어야 한다.

화두는 오늘도 이재명이다. 당은 그를 선거에 호출했다. 자숙과 선대위원장(지원유세)과 보궐선거 출마까지 세 높이의 선택지가 있었으리라. 그는 정면승부를 택했고, 그 평가서를 지금 받고 있다. 본인의 답답함은 정작 따로 있었을 게다. 검수완박 독주와 성비위가 먼저 도진 선거판은 그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을 수 있다. 정책과 일머리를 앞세워 치른 대선과도 결이 달랐다. “선당후사.” 내 정치적 안위만 고려할 수 없었다고 나선 길엔 “이재명만 살았다”는 독설도 날아든다. 보다 분명해졌다. 이재명이 걸어온 대선 꽃길은 없어졌다. 그도 계양산에서 정치복귀할 때 “저는 죄인”이라고 첫발을 뗐다. 그렇기에 대권 주자에서 내려온 그도 더 이상 성역일 순 없고, 앞엔 헤쳐갈 가시밭길만 보인다.

‘초선’ 이재명의 착점은 뭘까. 한발 뒤에서 긴 호흡을 하라는 이가 있고, 전대에 출마하라는 쪽이 있다. 시인 프로스트도 숲속에서 맞닥뜨렸을 ‘두 길’이다. 당권에 도전한다면, 두 가지를 떠올려보라 싶다. 먼저 그의 정치적 발판이 된 ‘야당 성남시장’의 길이다. 복지부·경기도와 부딪치며 그는 청년배당과 무상 교복·산후조리원을 시작했고, 공공병원을 세웠다. 생활진보 정치는 경기도의 지역화폐·계곡 정비·공공배달앱으로도 이어졌다. 이젠 직접 번호 매긴 법을 만들며, 170석 민주당도 민생·정책 정당으로 이끌어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한 숙제, 정치교체다. 당·국회·협치의 새 모델을 만들고, 내로남불·온정주의를 끊고, 시스템 공천을 완성해야 한다. 바로 그때, 전대는 총선 공천권이 아닌 길 싸움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치는 없다. 이재명도 민주당도 넘어진 데서 일어나야 한다.

22대 총선이 22개월 앞에 열린다. 여도 야도 큰 선거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4년 전의 문 대통령처럼, 윤석열 대통령도 지방선거 압승에 두려움을 비쳤다. 이제 취임 후 미룬 정책·입법 보따리를 하나씩 풀고, 여당의 시계는 총선을 향할 것이다. 7일 이재명은 등원하고, 이낙연은 긴 방미길에 올랐다. 이재명은 “낮은 자세로 듣는 중”이라 했고, 이낙연은 “강물은 휘어지고 굽이쳐도 바다로 가는 길을 스스로 찾고 끝내 바다에 이른다”며 떠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광역단체장(오세훈·김동연·홍준표)과 잠룡(안철수·김경수·이준석)도 뛸 것이다. 시민과 국가에 유익한 것은 여야의 ‘잘하기 경쟁’이다. 국정도 정치도 또 한번 고비 맞을 총선이 참 오묘한 위치와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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