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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표는 준엄했다. 108 대 192. 보수여당이 대참패했다. 1988년 ‘1노3김’이 겨룬 13대 총선 이래 여당 지역구 의석이 처음 두 자릿수(90석)로 쪼그라들고, 그 의석마저 셋 중 둘은 영남(59석)이었다. 2년 전 대선에서 이긴 한강·금강에서 완패하고, 낙동강과 서울 강남에서 명줄만 부여잡았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제 확대를 반대한 여당은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윷 던지듯 한 소선거구 진검승부에서 ‘모 아닌 도’를 잡았다. 그 투표함이 까진 4월10일 밤, 한국 정치는 또 한 번 개벽했다.“왜 저리 막 던질까.” 대통령이 총선용 감세·토건 공약을 나날이 쏟아낼 때다. “질 거니까.” 이 문답에 술자리에선 실소(失笑)가 터졌다. 정권심판론이 그리 컸고 이심전심으로 굴렀다. 허겁지겁 용쓰다 만 여당은 논외로 두고 그 심판의 시작과 끝, 오롯이 ‘윤석열’이다. 집권 2년 패인이 ‘디올백·런종섭’뿐일 리 없다. 검사 정치, 입틀막 정치, 이념 정... -
제 발등 찍는 ‘용산’
총선은 ‘4개월 전쟁’으로 불린다. 하루가 변화무쌍 길고, 공천·막말 하나로 요동치는 시간이다. 그 총선이 올핸 여섯달 전 시작됐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10월11일)이다. 그 후 변곡점이라면, 한동훈 비대위(12월26일)-김건희 특검·디올백(1~2월)-의대 증원 2000명안 발표(2월6일)-조국의 창당(3월3일)을 꼽겠다. 지금은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도피성 호주대사 출국을 빗댄 ‘런종섭’ 사건이 태풍의 눈이다. 공교롭게도, 돌고 돌아, 6개월 총선 시작도 끝도 정권심판 불씨가 지펴졌다.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45분, 국방장관 이종섭의 휴대폰이 울렸다. 훗날 공수처 통화내역 분석에서 유선전화(02-) 발신지는 ‘이태원로’, 가입자는 ‘대통령실’로 나왔다. 그 7분 뒤 국방부·해병대·국가안보실은 불난 호떡집이 됐다. 긴급전화가 오가고, 이종섭은 해병대에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 언론 브리핑과 경찰 이첩을 중단시켰다. 하루 전 박정훈 대령(수사단장) 보고를 ... -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총선 공기가 달라졌다. 설 전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한국갤럽)이 ‘35 대 34’에서 ‘31 대 37’로 역전됐다. ‘김건희 디올백’ 파장은 끝난 건가. 여론조사 전문가 3명에게 물었다. 답이 재밌다. 그렇진 않을 거라고…. 설 전후엔 지역구 공천 여론조사·발표가 많았던 여당 표가 더 반응했을 수 있다고…. 여당의 ‘김무성 불출마·김성태 낙천 수락’ 뉴스와 민주당의 ‘친명·비명·친문 싸움’ 뉴스를 대비시킨 이도 있다. 선거 공학이든 몸부림이든, 셋의 총선 평은 모아졌다. 여당 상승세, 야당 내림세다.민주당은 위기다. 승복하는 이, 헌신하는 이가 없다. 공천자·낙천자·경선자 다 이재명과의 거리만 따진다. 그러다 ‘의정활동 하위 20%’를 통지받은 국회부의장이 당을 떠났다. 밖으로는, 진보·시민사회와의 지역구·비례연합 협의도 순번 밀당에 가다서다 한다. 정권심판의 대의, 선당후사의 공심, 공천 잣대의 신뢰, 주류의 리더십이 다 흔들린 것이다. 설까지 앞서다 진 4... -
‘V2’의 디올백, 용산은 오늘도 잠 못 든다
엿새 전 새벽 2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자작시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목은 ‘슬픔의 의미’. “이제는 나의 때가 지나갔다고/ 헛헛한 발걸음 돌리니…”로 시작하는 시다. 대선 때 일찌감치 공개 지지해 ‘윤석열 멘토’로 불린 그는 얼마 전 “임금님놀이” “수직적 당정관계” “검찰정권”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했다. 왜 좋아요를 눌렀지? 시가 좋다는 건가? 세상을 멀리하겠단 말이 좋았나? 그러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꽂힌 건 새벽 2시다. 대통령은 왜 깨어 있었지?밤에 대통령이 뭐 하고, 누구를 만나는가. 정가의 영원한 관심사다. 보고서(DJ)와 책(문재인)을 보고, 인터넷(노무현)과 드라마(박근혜)를 즐긴다고 회자됐다. 꼭두새벽에 기동한 MB는 유달리 밤 얘기는 적다. 관저에서 만난 박철언(노태우)·김현철(YS)·박지원(DJ)·유시민(노무현)·이재오(MB)·최순실(박근혜)·김경수(문재인)는 ‘당대의 복심’이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권력이었다.윤 대통령은 야화... -
‘서울민국’, 그들만의 떴다방 정치
빛의 속도로, 대한민국과 한류는 압축성장했다. 반대로, 그 속도로 무너지는 게 있다. 46개월째 주는 ‘인구’, 브레이크 풀린 ‘기후위기’, 감사원이 100년 뒤 8개 시군구만 살아남는다고 경고한 ‘지역소멸’이다. 이 세 가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다 ‘서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그 수도 서울을 집권당이 다시 넓히자고 해 시끄럽다.이호철(2016년 작고)이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쓴 게 1966년이다. 서울이 강남·동·서로 2.3배 확장된 지 3년 지나고, 9개 구에 370만명이 살 때다. 그 서울도 이호철은 “꽉꽉 차 있다”고 썼다. 주택청약이 시작된 1977년,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근본 문제가 인구 집중”이라며 행정수도 구상을 내놨다. 그 꿈은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에서 펼치다 “관습헌법 위배”라는 헌재 판결에 막혔다. 1992년 1093만명을 찍은 서울엔 지금 25개 구에 940만명이 살고 있다. 해도, 서울은 과집적이고 계속 블랙홀이다.... -
강서에서, 한국 정치가 리셋된다
설은 형 집에서, 추석은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 해 됐다. 친지들도 여럿 모인다. 그 추석상엔 금칙을 정했다. 정치 얘기 않기로…. 소주 떨어져 슈퍼 갔다 오는 길, 어느 집에선 대낮부터 정치 언쟁이 붙었다. 툭 웃음이 터졌다. 하나, 두더지게임 같은 게 정치다. 술 한 순배 돌 때마다 “그런데~” 하며 튀어나오고, “그만요~” 하며 덮는 두 이름이 있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다.이재명이 기사회생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 하고, 검찰이 “무기징역감”이라고 호언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구속이 필요한 혐의로도 안 본 것이다. 2년 가까이 서울·수원·성남 검찰이 달려온 먼지털기 수사도 제동이 걸렸다. 대장동 사건은 이제껏 ‘428억 뇌물 약정’은 기소 못하고 배임죄 ‘고의’는 비워둔 채 막 재판이 시작됐다. 이재명의 영장 기각엔 세 뜻이 담긴다. 일방향이던 ‘검찰의 시간’이 유무죄 다투는 ‘법정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체포동의 내... -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가고 있는가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8월을 휘저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논객들의 글도 한 달째 그 말을 붙들고 있다. “국가 지향점을 이념”으로 잡은 첫 대통령이어서일 게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추종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틀 짓고, 그들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곧 국가였고, 말끝은 야당·비판언론·진보적 시민사회를 겨눴다. 세상은 그날로 두 동강났다.‘공산전체주의’는 학자들도 생소한 조어다. 이 땅에서만, 뉴라이트가 썼다. 2017년 1월23일, 뉴라이트 130여명이 ‘한국자유회의’를 출범시켰다. 2005년 수면 위로 처음 봉기한 이 집단이 박근혜 탄핵 촛불에 맞서 2차 사상전에 뛰어든 날이다. 그 선언문 해제(解題)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썼다. 김 장관은 그때부터 “국민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 존재”라며 헌법 제1조(국민주권)에서 엇나갔다.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조... -
윤석열의 ‘무책임장관제’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잼버리 담화는 다급했다. 중앙·지방 정부를 갈라친 속은 바로 읽혔고, 그 자체로 유체이탈이었다. 일국의 장관 셋이 공동조직위원장, 총리가 정부지원위원장이다. 열달 전 국회에 “태풍·폭염 대책 다 세워놓았다”던 김현숙(여가부 장관), 개막 3일 전 새만금에서 “사고 없도록 최선의 준비해왔다”던 이상민(행안부 장관), 연관어 ‘청소년’을 빼면 존재감 희미했던 박보균(문체부 장관)은 다 허깨비였나. 그러곤 목도한대로다. 냉방버스가 투입됐고, 화장실 청소에 1400명이 가세했다. 새만금엔 긴급 예산 99억원이, 대원들 전국 분산에 또 수백억원이 쏘아졌다. 세수 펑크난 나라에서 무슨 일인가. 총리가 할 게 걸레질인가. 그래야 움직이는 나라가 됐나. 왜 처음부터 못했나. 이 처참한 블랙코미디에 물을 게 끝 없다.관광! K팝! 총동원령! 야영 잼버리가 변질됐다고 외신이 혹평하는 세가지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가 브랜드... -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세숫대야로 들이붓네.” 물난리 난 16일, 부여 고향 친지는 전화 너머로 “비가 무섭다”고 했다. 예부터 하늘 뚫린 큰비를 세숫대야로 비유했었다. 친지는 그땐 한나절이고, 지금은 온종일 퍼붓는다고 했다. 백마강 벌판의 논·축사·비닐하우스는 다 흙탕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흘간 600㎜ 쏟아졌다니 눈에 선하다. 부여 비는 많이 온 축이다. 아니어도, 이 장맛비는 셌다. 산사태가 노부부·납골당·이주노동자를 덮쳤다. 오송 지하차도에선 수몰 참사가 또 벌어졌다. 50명이 세상 뜨고, 시·군·구 110곳에 이재민 나고, 여기저기 인재라니, 수해 민심은 펄펄 끓는다. 트위터엔 ‘#무정부 상태’ 해시태그가 번지고 있다. 오송 참사와 예천 산사태가 터진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행 열차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폴란드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미국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탄핵소추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직무 정지됐다. 공교롭다. 나라 밖이고, 공석이라서 무정부 상태인가. ... -
정녕 이동관뿐인가
2015년 8월27일자 경향신문 1면엔 ‘하나고, 남학생 늘리려 입시 조작’이 단독 톱기사로 실렸다. 사회면 톱 제목엔 ‘하나고, MB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아들 교내 폭력 은폐’가 달렸다. 서울시의회 하나고 행정사무조사에 참석한 이 학교 교사 전경원씨 증언과 인터뷰를 담은 것이다. 학폭 사건엔 피해자가 4~5명이란 진술서, 교사 2명이 학폭위 안 열리는 걸 문제 삼은 교직원회의, 이사장이 이 실세의 전화 받은 걸 실토한 게 적시됐다. 며칠 후, 언론계 선배 전화가 왔다. “여기 밥자리에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어 바꿔줄게.” 이 기사 데스크(부장)를 보던 때였다. “이동관입니다.” 사실관계와 입장을 되묻는 말이 사무적이고 딱딱했는지, 통화는 짧게 끝났다. “4년 전 일”이고, “학교에서 공식 대응할 거”라던 말이 기억난다. 이동관을 옥죄는 학폭 사건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 이동관의 방통위원장 내정설이 들린다. 설마 했다. 넉 달 전 아들 학폭으로 정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