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이 아름답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계좌 좀 불러보세요. 제가 지금까지 여기저기 상 받으면서 상금이 좀 있어서요.” 고마워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불러줬으나 입금된 액수는 무거웠다. 기부금 일금 3억원! 단, 조건이 있었다. 이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면 기부 철회를 하겠다는 것. 그래서 이 글을 쓰려니 조심스럽다. 이름을 대면 아하, 할 만한 영화감독이다. 그가 기부한 곳은 바로 오동진 평론가가 운영을 맡고 있는 ‘들꽃영화제’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 영화제는 2014년부터 들꽃영화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독립 저예산 영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주류 영화 산업 밖에서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영화인들을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품을 선정하여 올해로 9회째 상을 수여해왔다. 올해부터는 영화제로 확장하여 시상식과 함께 영화상영도 한다.

환경재단도 환경영화제를 해온 입장에서 동병상련이랄까, 혹독한 환경에서 뿌리내리고 자라되, 향기는 결코 뒤지지 않는 비상업적인 영화들의 창조적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허덕이는 건 매한가지라 흔쾌히 돕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치 내가 격려받은 듯, 그 거액 기부자 감독의 사연에 뭉클하였다.

영화감독들의 평소 과제는 시나리오 구상과 신선한 얼굴을 찾는 것이리라. 그래서 연극무대나 방송, 독립영화를 눈여겨보며 차기작에 등용할 인물들을 찾는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찬바람이 불었지만 천만 관객 영화가 새롭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전국의 배급망을 통해 천만명을 동원하려면 거의 모든 영화관을 싹쓸이해야 한다.

환경재단이 주관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지난 5일 열아홉 살이 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더십 과정을 이수한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함께 보았다. 1973년 레이 앤더슨이 창업한 인터페이스사의 지속가능 경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로를 넘어서>이다. 세상 바쁜 CEO들이 놀랍게도 1990년대부터 지구 자원을 착취하지 않으면서 더 좋은 제품으로 더 큰 이익을 얻는 데 성공한 이 회사의 사례에 깊이 공감하였다. 영화제 후원사에서는 아예 판권을 사서 자사 플랫폼에서 상시 상영하겠다고 한다. 정말이지 감개가 무량하다.

환경영화제가 적자 속에서도 19년이나 버틴 건 전 세계에서 응모하는 환경영화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는 무려 3800편이나 응모하였다. 21개 국가 환경영화제들이 그린필름네트워크로 연대해서 세계 각국에 영화를 통해 다양한 환경 이슈를 알려왔고, 환경영화들이 늘어나도록 서로 협력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천만 관객과 비할 바는 못되지만 이 연대의 힘으로 꾸준히 작품 수준도 높아지고 관객 수도 늘어날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란 다양한 생물들의 생존 시스템이 끊어지지 않으면서 같이 잘 살아가는 것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들꽃영화제를 후원하는 건 영화 생태계를 살리는 지혜로운 투자가 아닐까. 유능하다고 ‘서오남’(서울대·50대·남자) 단일종만 등장하는 현실이 답답해서 영화이야기를 에둘러 했다. 다양성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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