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번 위기는 넘기 어렵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더불어민주당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과 차기 당대표의 향방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헤게모니를 잡든간에 민주당의 위기는 깊어갈 것이다. 무엇보다 당의 핵심 콘텐츠인 ‘민주’와 ‘복지’의 호소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왜 ‘민주’의 호소력이 줄었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때 민주당을 호출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시절 공천파동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이어졌고, 국정농단은 민주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초대형 사고를 일으키기 어렵다. 소속정당 내 세력기반이 취약하니 관료 의존도가 높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으로부터도 견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피하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기꺼이 부르고 있다.

왜 ‘복지’의 호소력이 줄었나? 첫째로 보수도 꾸준히 복지에 힘써 차별성이 작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과 대학등록금 감면(국가장학금)을 도입했고, 윤석열 정부는 출생 후 1년간 부모급여를 지급할 예정이다(2024년부터 월 100만원). 둘째로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와 변화다. 현존하는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아도 2050년이 되면 조세부담률이 지금의 1.5배 이상이 되고 여기에 더해 소득의 20% 이상을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예측이 나온다. 청년세대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반응이다(20대에서 반대 60%, 찬성 33%).

민주와 복지의 효능이 줄어드는 와중에 노동, 지역, 교육, 주거, 산업, 재벌, 연금 등등의 개혁 주제들은 한마디로 ‘부도’가 났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말이다. 민주당에 이런 주제들을 다룰 내공이나 의지가 없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깊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적당히 외주를 주거나 대충 겉핥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부동산으로 실책을 거듭할 때도 견제할 수 없었던 것은 비판적 탐구력이 부족하고 내면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586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내 후속세대가 586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기색이 없다. 즉 문제는 ‘낡음’이 아니라 ‘게으름’인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공부를 안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다. ‘보수’란 원래 기존의 가치를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는 뭔가를 고쳐 나아지게 한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고칠지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결격사유다.

새로 꾸려질 혁신위원회에 제안한다. 민주당의 위기는 내공의 축적을 통한 자기확신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당’이라는 추상성으로 가리지 말고 정치인 개개인을 움직여야 한다. 전당대회 이후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 전원을 대상으로 개혁과제에 대한 논술형 시험을 치르고, 상위 20%는 답안지와 채점표를 공개하고 무조건 공천해주자. 시험 범위로 광주형 일자리, 부울경 메가시티, 서울대 10개 만들기, 스마트팜 귀촌 등을 제안한다. 실물과 추진동력이 존재하되 큰 의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서 제조업 리쇼어링 전략, 노조 반대의 정당성, 지속 가능성을 높일 방안 등을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기초체력을 기른 후 ‘적극적 이민개방이냐, 과감한 사회개혁이냐’라는 결정적 질문을 다뤄야 한다.

민주당의 혁신 못지않게 당의 원톱인 이재명 의원의 혁신도 필요하다. 나는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게 민주당에 최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 구실을 잘하려면 여당과 잘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권에 재도전하려면 한국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기 바란다. 나는 그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최측근 참모와 이야기하다가, 저출생·고령화를 아예 문제로 인정하지도 않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재명 의원의 측근 관리에 문제가 적지 않음이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는데, 정책 측근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막판에 김포공항 폐쇄라는 깜짝쇼가 튀어나온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뒤 당 대표가 되어 당을 장악하고 대권에 재도전하는 시나리오는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똑같은 경로를 밟고서 다시 낙선한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그가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이회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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