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산업과 연계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양성’을 강조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교육부는 곧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라거나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무리 봐도 지나친 발언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예전 일하던 방식과 달리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기부 등과 협의해 이전 교육부와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지식산업의 핵심은 휴먼캐피털(인적 자본)이고 우리나라가 도약하려면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양성이 절박하다” 등의 발언은 타당하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노동시장과의 미스매치로 인해 사회적 비효율과 학생·학부모의 고통을 유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것은 나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9년 내놓은 ‘한국의 청년고용 현황과 과제(Investing in Youth: Korea)’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대학교육이 OECD 평균에 비해 수준과 효용이 낮고, 직무와 전공이 불일치하는 비율이 높으며, 대학진학률이 너무 높아 과잉 스펙이 발생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 해법으로 고등학교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대학 교육과정을 노동시장의 상황에 따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 교육은 전체적으로 노동시장과의 미스매치가 심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교육기본법도 교육의 목표를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라고 밝히고 있다. ‘자주적 생활능력’을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과 등치시키고 있는데, 자주적 생활능력이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짐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최근에 지정학적 변화가 겹치면서 ‘반도체 인재 부족’이 현안으로 떠올라서 그렇지, 진즉부터 ‘소프트웨어 인재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었다. 수요는 크게 늘고 있는데 대학 정원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로 서울·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수도권 규제로 묶여 있고, 둘째로 대학 자율로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려니 정원이 줄어들 학과의 반발이 두렵고, 셋째로 비수도권 국립대가 대안인데 지금까지 정부는 여기에 투자할 의지가 없었다. 결국 반도체든 소프트웨어든 정부가 나서야만 해결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나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며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뭐가 진짜 포퓰리즘이었는지 알려주마’라며 반박하곤 했다. 이 맥락에서 포퓰리즘이란 ‘대중영합’과 ‘무책임’을 결합한 뜻일 텐데, 그렇다면 진정한 포퓰리즘 교육정책은 1990년대 전후 직업계고를 줄이고 대학을 늘린 것이다. 직업계고(실업계고) 학생 비율은 1970년 47%, 1980년 45%였으나 이후 급감하여 2000년 36%, 2020년 18%에 그쳤다. 2016년 OECD 평균이 46%(고졸자 중 직업교육 프로그램 이수 비율)임을 감안하면 한국 교육이 얼마나 인문계 편향적인지를 알 수 있다. 아울러 김영삼 정부가 1996년 발표한 ‘대학 설립 준칙주의’에 따라 대학 설립이 손쉬워지면서 대학이 급증했고,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로 인한 낭비와 비효율을 우리는 지금 이른바 ‘지방대 소멸’이라는 현상으로, 그리고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매년 1만명 이상이 전문대로 재입학한다는 사실을 통해 절감하고 있다.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의 세부 내용을 보면 조마조마한 부분이 많다. 부디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릴 때 수도권 대학에 집중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를 빌미로 초·중·고 교육예산을 전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진보 교육계에서 ‘박정희 시대가 연상된다’며 비판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반론의 여지가 있다.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은 정부가 압도적인 권력을 이용하여 계획을 세우고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이러한 형태의 산업정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산업정책, 즉 교육·연구개발·인프라 등에서 정부가 포괄적인 전략과 투자지침을 가지는 것은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유독 한국 교육계는 아마도 미국 학계의 영향으로 인해 1980년대 이후 산업정책적 시각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특히 진보 교육계는 ‘교육의 독립성’이나 ‘교육적 가치’를 앞세워 산업적 접근 자체를 백안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이 진정한 진보일까? 직업교육에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폴리텍대학, 마이스터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등이 모두 보수정부 시절 설계되었음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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