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을 든 아이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캐논, 스트랩, 피스, 버너, 히터, 초퍼, 해머, 연장, 비스킷.’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이것은 모두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속어다. 이 사물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열다섯 살 윌이 형을 잃을 때도 그랬다. 윌의 형 숀은 습진으로 피가 날 만큼 몸을 긁는 엄마를 위해 아홉 블록 떨어진 가게까지 갔다 오는 길이었다. 그 가게에서만 습진전용 비누를 팔기 때문이다. 비누를 사오던 숀은 총에 맞아 동생 윌의 눈앞에서 숨을 거둔다. 제이슨 레이놀즈의 청소년소설 <롱 웨이 다운>이야기다. 이 책은 윌이 총기살인범에게 복수하려고 자신도 총을 들고 나와 엘리베이터에 탄 뒤 8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1분 동안에 벌어진 일을 다룬다. 윌은 동네 형 릭스가 동네 깡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숀을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탑승자들이 윌에게 말을 건다. 그들은 놀랍게도 죽은 사람들이었다.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 사람을 죽이러가는 윌에게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말한다.

지난 5월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 19명과 두 명의 교사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자동소총과 고용량 탄창으로 무장한 채 교실에 들어와 총기를 난사한 뒤 인근에서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미국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미국 전역의 교내 총기사고 발생장소는 초등학교가 59개교로 가장 많았다. 그 전년도까지는 고등학교가 많았으나 범죄자들이 더 어린 연령층을 표적으로 삼으면서 역전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유색인종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초등학교일수록 총기 사고에 더 자주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한다. 혐오 범죄는 더 어린 약자를 겨눈다.

책가방에 끼우는 방탄조끼가 개발됐다는 뉴스도 들린다. 미국 초등학교의 95% 이상은 어린이와 총격범 대응 훈련을 실시 중이다. 이번에 생존한 열한 살 세릴로는 친구의 피를 몸에 바르고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고 목숨을 건졌다. 총격범 대응 훈련은 셰릴로를 살렸으나 셰릴로의 친구들은 살리지 못했다. 이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대응 훈련에서 총과 가짜 피를 본 뒤 트라우마를 겪는 어린이들도 많다.

이런 현실임에도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전미총기협회와 총기 옹호 단체들이 로비를 위해 쓴 돈은 총기규제 촉구 단체가 쓴 비용의 일곱 배에 이른다. 총기판매점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의 앤드루 클라이드 의원은 교사들을 총으로 무장시켜 학교를 더 까다로운 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어린이들이 희생된 유밸디에서 자라난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는 백악관을 방문해 “이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다른 아이들의 꿈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총기 규제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만큼은 미국 의회가 초당파적으로 총기규제안을 통과시킬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말한 <롱 웨이 다운> 43면에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 죽었을 때 더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그 사랑도 돈과 총을 이길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총과 포탄으로 인한 비명이 넘쳐나고 있으나 손익을 셈하는 이들은 여기에 수익률에 대한 환호로 답한다. 총소리를 생중계해 돈을 챙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애도하는 정치인들은 잠시만 더 사랑하고 희생자 대신 정략을 택한다. 삶의 존엄성과 사랑은 언제쯤 승리할까.

총기 규제를 문학으로 설득하는 <롱 웨이 다운>은 그래픽노블로도 출간됐다. 2022년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이 6월16일 발표됐는데 이 작품을 그린 대니카 노프고로도프가 수상했다. 총기 규제를 향한 발걸음에 힘을 보태주는 소식이다. ‘비스킷’을 든 열다섯 살 윌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총기규제만이 총이 다른 총을 들게 만드는 잔혹한 현실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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