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오바마 2.0을 넘어야

박영환 국제부장

한·미 정상회담과 후속 외교장관 회담을 거치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목표가 확인됐다. 한·미 정상은 양국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규정했고, 박진 외교장관은 미국을 찾아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을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국력에 맞는 역할을 하겠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각론을 뜯어보면 과거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과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말조차도 이명박 정부의 ‘글로벌 코리아’와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정책을 설계·집행했던 5인회 멤버가 국가안보실장(김성한), 국가안보실 1차장(김태효)으로 다시 키를 잡았으니 예견된 결과다. 때마침 조 바이든 미국 정부도 이명박 정부 때 함께했던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 정책 기조를 잇고 있다. 윤석열·바이든 시대 한국의 대외정책은 이명박·오바마 시대 대외정책의 2.0 버전이 될 듯하다.

박영환 국제부장

박영환 국제부장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대북정책이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북한 눈치를 보는 유화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또 북한을 망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함께 번영하는 길을 택하라고 제안했다. 북한의 도발은 한·미 연합훈련 강화, 미국의 확장억제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3000’ 정책의 재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잘 조율된 실용적 접근’이란 그럴듯한 대북정책을 내놨지만 실상은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에 가깝다.

먼저 핵을 포기하면 잘살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북한이 받을 리 없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 데 이어 핵실험까지 예고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험했던 한반도 안보 불안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모두 이명박 정부 시절 일이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무능과 무관심을 포장하고 있을 때 북한은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됐다. 북한의 핵실험 여섯번 중 네번이 이명박·오바마 정부 시절 이뤄졌다.

한·미 동맹이란 동전의 이면에는 한·중관계와 한·일관계가 있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안보동맹뿐 아니라 경제·기술동맹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받아들임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 회담 직후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노선 변화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란 말이 나왔다. 미·중 패권경쟁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어정쩡한 스탠스와 미·중 눈치보기로 피해갈 수 없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미·반중 노선을 걸었던 이명박 정부의 선례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뭘 보상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2년 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한다면 중국의 보복에 대한 미국의 보호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은 한·일관계 개선을 원한다. 삐걱거리는 한·일관계가 중국 포위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도 한·일관계 개선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012년 지소미아의 국무회의 비공개 의결을 추진하다가 반대여론에 막혀 실패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이가 김 차장이니 예정된 수순이다. 한·일관계는 양국 모두 국내 정치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일관된 전략이 없다면 여론에 휘둘려 냉탕, 온탕을 오갈 확률이 높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다. 그도 집권 초기에는 “성숙한 한·일관계”를 표방하며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하지만 임기말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한국 대통령 처음으로 독도땅을 밟는 등 강경책으로 돌아섰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은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정권교체로 집권한 한국 보수정권과 한반도 문제에 힘쓸 여력이 없는 미국 민주당 정권이란 조합도 일치한다. 하지만 그대로 답습하거나 적당히 고쳐쓰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과거의 실패를 직시하고 그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부와는 무조건 반대로)에 집착했던 것처럼 현 정부도 ABM(Anything But Moon)을 고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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