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유리천장 깨기 가속페달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최근 유럽연합은 상장기업의 상임·비상임 이사를 각각 33% 또는 비상임 이사의 40%를 과소대표된 성, 즉 여성으로 임명하는 ‘여성 이사 할당제’를 2026년 6월부터 의무화하기로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12년 여성이사 할당 지침을 발표하며 할당제를 위한 초석을 닦았으나 법적 개입이 아닌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던 독일, 영국 등 주요 회원국들의 반대로 오랜 기간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수의 회원국이 2020년까지 목표로 했던 이사회 내 여성 비율 40% 달성에 실패하자 반대 입장에 섰던 국가들이 할당제에 지지를 표하며 논의가 급진전됐다. 특히 법적 구속력을 가진 할당제를 갖춘 국가들이 여성 이사진 비율 확대에 더 나은 성과를 보이자 회원국들은 그 효과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유럽성평등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연합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은 2003년 8.2%에서 2021년 30.6%로 높아졌다. 하지만 회원국 간 격차가 커 유럽연합은 할당제를 통해 권역 내 여성 이사진 확대의 균등한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이번 할당제는 법적 구속력이 있어 회원국 기업에 강한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각국 정부는 할당제 목표에 미달한 기업에 대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사가 되지 못한 후보자가 기업에 근거를 요청하면 자격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이사진 구성 때, 성평등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많은 연구들은 여성 이사진의 확대를 통해 이사회의 성별 균형이 잘 이루어진 기업일수록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여성 이사진 비율의 증가가 조직 내 성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여, 여성들의 승진이나 경력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이밖에도 여성 이사진이 기업 내 의사결정 과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특정 산업, 이를테면 패션, 화장품 산업에서는 여성 이사진 확대가 여성 소비자의 성향이나 행동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여 더 나은 재무성과와 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한편 성별 직종 분리가 도드라지는 산업, 특히 남성 중심적인 기업에 여성 이사진을 기계적으로 배치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전문성 결여, 조직 내 갈등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또한 이사회 내 여성 이사의 제한적 역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사진 내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역할이 남성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사진 내에서도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기업 내 여성의 이사직 진출이 기업에 더 많은 성과를 제공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으며 여성 이사직 비율 확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할당제를 꼽고 있다.

기업 내 여성 이사직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할당제는커녕 여성 이사진 확대에 대한 논의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올 8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되어 여성 이사진 확대가 점차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내각 구성에 있어 낮은 여성 장관 비율을 볼 때 민간 영역 내 여성 리더십 확대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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