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갈 때 뭘 가져가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조선시대 사람들은 여행갈 때 뭘 가지고 갔을까. 어디에 가서 뭘 봤다는 기록은 많아도 뭘 가지고 갔다는 기록은 드물다. 최대 분량의 개인일기인 황윤석의 <이재난고>에 단서가 있다. 1766년 황윤석이 고향 흥덕(전북 고창)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갖고 간 물건 목록이다. 도포 두 벌, 적삼 세 벌, 버선 세 벌, 바지와 속옷 여러 벌, 한여름인데 겨울옷까지 가져갔다. 비를 대비해 삿갓과 비옷도 챙겼다. 짐 한쪽을 차지한 세면도구와 구급약은 지금도 여행자의 필수품이다. 선비 아니랄까봐 안경, 종이, 붓, 먹, 벼루에 책도 여러 권 넣었다. 심지어 베개와 이불, 요강까지 가져갔다. 조선시대 주막은 침구를 제공하지 않았으니까. 이쯤 되면 혼자 힘으로는 무리다. 나귀에 싣고 갔거나 노비를 시켜 운반했을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황윤석의 여행 기간은 열흘 남짓이었다. 짐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간다. 황윤석이 한양에 올라간 것은 여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벼슬살이를 위해서였다. 그가 가져간 물건들은 여행용품이라기보다 이삿짐에 가깝다. 배낭여행자의 짐은 훨씬 단출했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소하집>은 경기 이천의 선비 이재정의 문집이다. 이 책에는 1893년 그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여행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 여행 준비물 목록이 보인다. 우선 패도 한 자루. 패도는 휴대용 칼이다. 호신용은 아닌 것 같다. 캠핑의 필수품 스위스 아미 나이프 같은 용도로 보인다. 다음은 빗 주머니. 큰빗, 참빗, 빗털이개, 기름종이, 뿔조각, 머리띠가 하나씩 들어 있다. 전부 헤어 스타일링 용품이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사람들은 머리를 깎지 않았다. 남자도 상투를 풀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늘어진다. 이 치렁치렁한 머리를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장발 여행자에게 빗과 머리띠는 여행을 앞두고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물건이다. 허리춤에 차는 작은 주머니에는 거울과 면빗, 부싯돌을 넣었다. 세면도구라고 보면 되겠다.

주머니가 하나 더 있다. 필통 대신이다. 붓 두 자루와 먹 반 개를 넣었다. 짐을 덜려는 의도인지 벼루는 가져가지 않았다. 남의 것을 빌려 쓰거나 적당한 돌멩이를 주워 썼을 것이다. 이밖에는 책 두 권뿐이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전>과 일기장이다. 책은 뭐하러 들고 갔을까. 지금도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교통편을 기다리고 동행을 기다리고 날씨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책이 있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일기장은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용도다. 결국 그 일기장이 금강산 여행기가 되었다. 이재정의 여행 준비물은 이것이 전부다. 갈아입을 옷조차 없다. 이재정은 이 단출한 짐으로 45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단출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코로나19로 주춤해진 여행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연휴가 조금만 길어지면 공항이 북적이는 풍경을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제주를 비롯해 관광객이 선호하는 국내 여행지는 이미 북새통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행은 갈수록 편리해지는데 짐은 반대로 늘어난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지도, 책, 노트, 필기구, 사진기가 전부 들어가는 세상이다. 지갑도 필요없다. 짐이 가벼워야 마땅한데 여행이 며칠만 넘으면 캐리어가 한가득이다. 어째서일까. 불편을 참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 여행을 가면서도 집처럼 편안하기를, 아니 집보다 편안하기를 바라서다.

불편한 여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숙소를 기대하며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의 본질은 익숙한 일상과의 결별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색다른 경험이다. 그 색다른 경험에는 불안과 불편도 포함된다. 여행자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해진 여행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볼 때이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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