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물고기나 새가 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바람이 잠잠한 날이 없어 바다가 항상 거칠기만 할 때, 인간은 바람을 죽이고자 했다. 붉은배지빠귀니, 정어리니, 갈매기에게 부탁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다음으로 광동홍어와 가자미를 보냈다. 바람은 죽지 않았다. 가자미를 밟아 미끄러지면서 광동홍어의 수염에 찔려 크게 다친 뒤, 어쩔 수 없이 좋은 날씨를 약속했다.1) 물론 인간의 말이 전하는 기억이다.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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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좋은 날씨가 돌아왔을 때 인간은 무엇을 했을까. 바다에 배를 띄워 가자미와 광동홍어를 잡아먹었겠지. 그들의 힘을 갖고 싶었을 테니.

우리에게 인간은 특별한 적이 없다. 개미들이나 벌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드러진 점은 하늘에 떠 있는 단 하나의 불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불을 숭배했을 뿐 아니라 그 힘을 갖고자 했다. 갖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이겼을 것이다. 불을 곁에 두고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땅과 물과 하늘에 사는 모든 짐승의 힘을 얻었다고 믿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2)라고 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 했고 더 나아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불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한 번 지피면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믿음이 변하자 인간의 말이 전하는 이야기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체르노빌에서 폭발 사고가 터지고 48시간이 지났을 때,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커다란 구름이 공기의 강을 따라 모스크바의 하늘을 향해 움직여 갔다. 칠흑처럼 검은 구름은 붕괴한 원자로의 불을 끄기 위해 쓰인 중금속과 십수 가지의 불안정한 원소들을 품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바람을 잠들게 하는 힘이 없었으므로, 소비에트 국가수문기상학연구소를 총괄하는 유리 이즈라엘은 비를 만들어 구름을 없애기로 결정한다. 포탄에 아이오딘화은을 탑재한 전투기들이 모스크바 공항에서 이륙했고, 검은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벨라루스의 한적한 마을 나로블랴의 주민들은 비행기들이 기이한 비행운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목격했다. 오후 8시에 우레가 치기 시작했고 폭우가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이어졌다. 벨라루스의 곳곳에서 비슷한 날씨가 계속됐다. 방사성 먼지를 머금은 비는 땅을 적셨고, 풀과 나무는 중금속과 방사성 원소를 오래 기다리던 영양분처럼 빨아들였다. 풀을 뜯은 양과 소의 몸속에도, 나무의 열매 속에도 방사성 물질이 남았다. 지역의 모든 생명체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4호 원자로의 일부가 되었다.3)

그해 봄과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체르노빌 지역에서는 가뭄이 지속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흘러드는 드니프로 강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종사들이 9t에 달하는 시멘트와 구름의 습기를 말리는 시약의 혼합물인 시멘트600을 발전소 주변에 살포했다. 방사능 비는 모스크바에 내리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에는 조금 내렸다.4) 내리지 못한 비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바람이었다가 구름이었고 비였으며 흘러서 바다로 가는 강물이었다. 공기이면서 불이고 물이면서 땅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1963년 공중과 수중에서 핵실험이 금지되기 전까지 북반구에서 핵폭발은 수없이 일어났다. 그 어느 한순간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순환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불은 우리의 순환에 잠시 끼어든 장애물이며 무질서이다.

꺼지지 않는 불씨는 인간의 말 그대로 꺼지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순환하며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모든 생명체는 손에 움켜쥔 스프링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씨를 품게 되었다. 각자에게 할당된 크고 작은 불씨를, 인간은 재앙이라고 부른다.

1) <대칭성 인류학>, 나카자와 신이치 2) 히브리서 11장 1절 3) 4)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케이트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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