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 혁신의 방향

지난 19일 금융규제 혁신회의가 출범했다. 빅블러(Big Blur) 현상으로 인한 금융산업 구조와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 금융산업이 독자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고 한다. 신임 금융위원장이 내정자 시절부터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기에 기대가 크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산업 간 융·복합화의 진전과 함께 전통적인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 현상은 금융산업에서도 보편적인 흐름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편결제를 필두로 기술 기반 신규 사업자들이 출현하고, 플랫폼 기반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도 확대되어 왔다. 물론 이는 인터넷전문은행,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규제샌드박스 도입 등 디지털금융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들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금융소비자들은 언제부턴가 굳이 은행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조회, 이체와 같은 단순 업무뿐 아니라 예·적금, 투자, 대출까지 비대면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반면 금융법제와 같은 금융 규율체계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산업과 시장의 융·복합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전통적인 분류체계와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금융 정책들은 대부분 기존 금융 규율체계의 개선보다는 그 외부에서 특별법이나 예외 규정 등의 형태로 추진된 것들이다. 이는 디지털혁신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 금융회사에는 ‘과잉 규제’, 빅테크 사업자에게는 ‘과소 규제’라는 이분화된 규율체계를 초래했다. 게다가 금융업 내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핀테크와 플랫폼 경쟁력에 기반하여 금융-비금융 서비스를 결합하거나 묶어서 제공하는 빅테크에 대한 규율체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비대칭 규제에 기반한 정책의 수혜는 결과적으로 소수 대형 빅테크 사업자들에게 돌아가고,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 이슈가 불거졌던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금융규제 혁신의 핵심은 빅블러 시대에 걸맞은 금융법과 제도의 재확립이다. 단순히 규제 완화가 아니라 금융법제 외부에 있는 제도와 정책을 안으로 포섭하고, 금융규제의 일관성과 균형을 재정립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화는 금융산업의 혁신과 효율성 그리고 소비자 편의성을 제고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업주의, 금산분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규율체계의 적합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으로 인한 제조와 판매의 분리 심화 현상에 대해서도 소비자 보호와 책임성의 관점에서 적절한 규제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금융규제 혁신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한국과 제도적 차이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전업주의와 금산분리 규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7년 아마존의 일본 은행 진출설을 계기로 그해 11월부터 포괄적인 금융제도 개편 논의가 이루어졌다. 장기적으로는 금융법제를 업종별 규제 대신 기능별 횡단적 규제로 전환한다는 목표하에 당장은 현행 법 자체는 유지하되 각 법률에 기능적 횡단적 원칙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에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은행 및 자동이동업 등 업종 중심의 결제업무를 규모별로 세분화하여 기능별 횡단법제로 전환했다.

한편 은행업고도화회사와 종합금융중개업 도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행업고도화회사는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해 은행업의 고도화, 은행 이용자의 편의 향상에 기여하는 업무를 영위하는 회사로 정의되는데, 이 경우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핀테크 회사를 포함, 다양한 정보기술(IT) 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한 것이다. 그와 함께 단일 라이선스로 은행, 증권, 보험상품의 중개가 가능한 금융서비스중개업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1사 전속주의를 벗어나 중개업에 대한 규율체계를 정비한 바 있다.

무릇 혁신이라 함은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새로움이 가져다주는 이익, 즉 혁신의 사회적 편익이 익숙함을 벗어나는 데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보다 크다면 안 가본 길이라고 망설이기만 할 수는 없다. 이번 규제 혁신 시도가 금융 패러다임의 성공적인 전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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