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위협’의 어두운 그림자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올해 들어 부쩍 러시아와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 발언을 자주 듣는다. 핵무기는 대량살상무기여서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무기’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심리적·정책적 차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

우선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속전속결 실패, 나토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래식 무기 원조 등으로 러시아군의 피해가 급증하자 푸틴과 그의 측근들은 지난 4개월여 동안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해왔다. 2020년 6월자 ‘핵억지 영역에 대한 러시아 연방의 국가정책 원칙’이 밝힌 핵무기 사용 4대 조건 중에는 ‘러시아나 동맹국을 공격하는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는 믿을 만한 정보를 입수한 경우’와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당해 존립을 위협받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경우, 남한이 ‘선제 타격’ 등을 통해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핵무기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는 4월4일자 김여정의 발언, ‘전쟁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강조한 4월25일자 김정은의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경축 열병식 연설,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무모한 군사적 책동으로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핵전쟁이 동시에 발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조성됐다’면서 한·일 양국 정상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겨냥한 7월3일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 경고, 남한정권과 군대가 ‘선제적’ 공격의 ‘위험한 시도’를 한다면 핵무기 사용을 통해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임을 공언한 7월27일자 김정은의 ‘전승절’ 연설이 이어졌다.

주목할 것은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은 공식적으로 미국을 겨냥했는데, 이제는 ‘공개적’으로 윤석열 정부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예전과 달리 ‘핵무기’ 사용을 명시한 대북 확장억제의 강조, 이를 실행하는 한·미연합훈련의 본격적인 재개 결정, 국방장관의 선제타격 발언 등 윤석열 정부가 대북 강경 군사정책으로 돌아서자 북한이 보인 반응이다.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 위협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가? 6·25전쟁 중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했고,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에는 한·미연합훈련 계획에 ‘북한 남침 시 필요할 경우 핵무기 사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다가 2013년 봄 한반도는 초유의 ‘핵전쟁 위협’ 상황을 맞았다. ‘키 리졸브’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전략 핵폭격기들의 한반도 전개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예고, 남한 사격장에서 전략폭격기들의 모형 핵무기 투하 연습이 이어졌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대미 ‘핵 선제공격’을 위협하면서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불가침 관련 합의들의 무효화, 전시상황 진입 선언, ‘병진노선’ 채택과 핵보유 법제화, 괌에 대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공격 위협, 영변 핵시설 재정비·재가동 선언 등 일련의 대항조치들을 취했다.

2017년 후반~2018년 초에 한반도는 훨씬 실질적인 ‘핵전쟁 위협’에 처했다. 2017년 중·하반기에 북한이 ICBM 시험발사와 수소탄 실험에 성공하자, 워싱턴에서는 군사력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했다. 당시 대북 작전계획 5027에는 80기의 핵무기 사용이 포함돼 있었다. 2018년 1월1일과 2일에는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각각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핵단추를 자랑하며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핵 예방타격’을 공언하고 ‘핵선제 불사용 원칙’을 폐기했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핵보유국들 간에 관계가 좋을 때는 서로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하지 않았다. 핵전쟁 위협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서는 항시적으로 적대국 간의 관계유지와 평화증진에 힘써야만 하는 이유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전쟁,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단순한 전쟁위협이 아닌 심각한 ‘핵전쟁 위협’을 두 번이나 겪었다. 핵무기 사용 위협이 ‘일상 언어’가 되는 경우, 우리의 심리와 인식에서 그만큼 ‘핵문턱’이 낮아지게 된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선택을 모색하는 협상을 재개하여야 한다. 책임 있는 지도자와 국민이라면 핵무기 사용 위협이 반복되도록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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