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영우와 헤어질 결심

이명희 사회에디터

“우영우는 자폐계에서는 사실상 초능력자 수준의 인물이다. 그런데 슈퍼히어로 영화가 말도 안 된다고 그게 재미가 없고 불편하냐? 피터 파커가 거미한테 물렸다고 갑자기 벽을 타는 건 안 불편했던 너희들이 우영우가 변호사 되는 건 불편해?”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명희 사회에디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둘러싼 여러 우려와 비판에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그의 관점에서 <우영우>는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이 글을 읽다가 뜨끔했다. 장애인이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이 정도로 다룬 드라마가 있었던가’ 하면서 <우영우>를 칭찬할 준비가 돼 있던 나로선 서늘한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우 to the 영 to the 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드라마에 푹 빠져 인사법을 따라 하면서도 정작 내 안의 편견과 차별은 알아채지 못했다.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장애인뿐일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주 외국인, 난민, 성소수자 등이 그 대상이다. 요즘 <우영우>만큼이나 화제인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은 결혼이주여성이다. <우영우>가 판타지라면 <헤어질 결심>은 ‘그들’의 현실에 조금 더 가깝다. 영화는 산에서 추락사한 남성의 중국인 아내 송서래(탕웨이)와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장해준(박해일)에 관한 이야기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를 나도 며칠 간격을 두고 두 번 보았다. 경찰과 용의자로 만난 두 사람의 막막한 사랑에 속이 헤집어졌지만, 영화평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련다.

서래는 불법입국을 눈감아준 출입국 공무원과 결혼해 정착했지만 “참 불쌍한 여자”다. 간병인 일을 하는 그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방되는 것이 두려워 신고도 못하고 살아온 가정폭력 피해자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살해당한 후 피의자 심문을 받을 때다. 해준은 서래에게 ‘왜 그런 남자들이랑 결혼을 하느냐’고 묻는다. 서래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해서”라고 하지만 진짜 대답은 영화의 뒤에 나온다. “해준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영화를 보면서 이 대사가 찌르듯 귀에 들어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사는 서래 같은 이주여성들의 ‘지위’를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아마도 추측컨대 이주여성들에게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떠오르는 괴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와 영화에 웃고 울다 돌아온 현실의 괴리는 크다. 우영우가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같은 동료를, 서래가 해준 같은 형사를 현실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종류가 다를 뿐, 세상 모든 약자들의 슬픔과 분노는 꽤 닮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모르게 ‘정상’ 범주에 나를 포함시키고, 거기서 벗어나는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보는 것에서 차별은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력, 직업, 재산, 성별 등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우리도 언제든지 ‘그들’이 될 수 있다.

최근에도 소득과 학력을 정치 성향과 연결시킨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이재명 의원의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는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이 의원은 취지와 맥락은 무시한 채 발언 일부만 잘라내 왜곡됐다고 반박하지만 사실상 ‘서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해온 민주당의 전 대선 후보이자 당권 후보의 발언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차라리 ‘대선에서 왜 그들은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양극화 시대에 서민들을 대변하는 데 더욱 힘을 쏟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지난 3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두고 ‘선량한 시민’의 불편을 야기하는 ‘비문명적’ 방식이라고 언급한 것은 또 얼마나 고약한가. 문제는 정치인들의 이런 편가르기가 우리 사회의 차별을 더 공고히 한다는 데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 성별, 학력, 재산 등을 경계로 일상에서 차별이 일어난다. 은연중에 나도 거기에 가담하고 있다. 과연 나는 ‘그들’과 계속 다를 것인가. ‘힘없는’ 이들이 우리 사회엔 수두룩하다. 이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특정 집단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의 편견과 차별이 ‘마침내’ 붕괴되기를…. 그런데 나는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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