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제갈량은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다

엄민용 기자

최근 큰 물난리를 겪으면서 이를 전하는 신문과 방송에 “기록적 폭우에 초토화된 수도권” “고작 세 시간 내린 비로 600여평 밭이 초토화” 등 ‘초토화’라는 말이 많이 등장했다. 올해뿐 아니라 해마다 장마철이면 자주 접하는 말이 ‘초토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초토화’를 아무렇게나 쓰고 있다.

하지만 ‘물난리’와 ‘초토화’는 어울릴 수 없는 말이다. ‘초토화’는 “초토가 됨. 또는 초토로 만듦”을 뜻하는데, ‘초토’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또는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토(焦土)의 ‘焦’ 아래에 붙어 있는 ‘연화발’은 불 화(火)와 같은 의미의 부수다. 따라서 ‘연화발’이 들어간 한자는 불과 관련된 의미를 갖게 되며, 물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난리로 인한 피해에는 ‘초토화’보다 ‘쑥대밭’을 쓰는 것이 낫다. ‘쑥대밭’의 본래 의미는 “쑥이 무성하게 우거진 거친 땅”이지만 “매우 어지럽거나 못 쓰게 된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형편’이 쑥대밭이다. 이렇듯 우리말을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한자말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출사표를 던지다’ 같은 이상한 표현을 쓰기 쉽다.

출사표(出師表)는 “출병할 때에 그 뜻을 적어서 왕에게 올리던 글”로, 가장 유명한 것이 중국 삼국시대 때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이 선대왕 유비의 유언을 받들어 출병하면서 제2대 왕 유선에게 바친 글이다. 여기에는 촉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유능한 인재 등용 같은 간곡한 당부의 말이 담겨 있다. 이러한 글을 제갈량이 왕에게 ‘옜다 받아라’ 하는 식으로 던졌을 리는 없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국가대표 선수 등은 유권자 또는 국민에게 출사표를 쓰게 된다. 그것을 집어던졌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출사표 뒤에는 ‘올리다’ ‘밝히다’ ‘전하다’ 등을 상황과 문맥에 맞게 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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