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신정권

송기호 변호사

이겼다. 헌법재판소 대법정을 나와 피해자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이긴 기쁨이었을까? 헌법재판 6년을 버틴 서러움이었을까? 지난달 2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거대한 국가기구와 싸워 이겼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 표시 광고를 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고발하지 않고 조사 종결한 것이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선언했다. 한 명의 피해자가 6년을 싸워, 가습기 살균제 생산자 SK와 판매자 애경을 처벌할 수 있는 첫 관문을 열었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 사망자만도 1066명에 이른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다른 비극적 사고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가족 건강에 좋은 줄로 믿고, 사랑하는 가족의 머리맡에 정성스럽게 가습기 살균제를 넣고 틀어 주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이 매개였다. ‘인체 무해’ 표시 광고가 없었다면 가족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SK와 애경은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표시 광고하여 소비자를 속여 유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검찰이다. 검사들이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제대로 수사했다면 피해자들은 여태 서러운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SK와 애경 제품 피해자들의 줄기찬 수사 요구를 외면했다.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내 귀로 직접 들었다. 피해자의 수사 요구는 검찰청 정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SK와 애경 제품 피해자들은 아예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이 앓은 천식이나 식도 질환, 그러니까 ‘상부 호흡기 질환’은 피해 개념에서부터 배제되었다.

2019년에서야 검찰이 재수사하여 SK와 애경을 기소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사건의 핵심인 ‘인체 무해’ 표시 광고 행위는 기소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과연 SK 애경 제품만 사용했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검찰은 법원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너무 늦은 수사의 당연한 결과였다. 2012년에 검찰이 SK와 애경 피해자의 수사 요구를 발로 차버리지 않았다면 최소한의 증거들을 확보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자들의 맨 앞에 검찰이 서야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과해야 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난 어두운 검찰의 힘을 본다. 그들은 누가 처벌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들은 사망자가 1000명이 넘는 사회적 참사조차도 뒤틀고 왜곡시킬 힘이 있다.

시민운동가 안성용은 최근 저작 <한국에서의 정치투쟁>에서 검찰 집단이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검찰이 정보 및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독자적 권력으로, 한국 사회 지배 카르텔 속에서 자생적 경제력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내가 안성용의 경고에 주목하는 까닭은 최근 ‘윤석열 기차’ 풍자 만화를 그린 한 고등학생에게 가해진 국가의 억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선진국 한국의 공무원을 1980년대 전두환 파쇼 정권 시기로 돌려 버린 이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그 뒤에는 검찰 출신 대통령,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그리고 법무부 장관 직속 공직자 검증 인사정보관리단이 있다.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최우가 설치한 인사행정기구 ‘정방’에 문신들이 끌려다닌 현상이 2022년 선진국 한국의 공무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성남시민프로축구단 광고 사건으로 엮어 기소하려고 시도한다. 무신정권이 ‘교정도감’을 만들어 반대세력을 탄압한 역사가 떠오른다. 성남 시민축구단 광고 사건은 이미 무혐의 결정이 났던 사건이다. 달라진 것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패했다는 점, 광고를 준 기업 관계자의 진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구성원리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실체적 진실은 사법부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계열사를 성남에 유치하고, 성남시민구단을 활성화시켜 성남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성남시민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집행된 광고를 통해 기업도 이익을 보았다. 과연 여기에 무슨 뇌물성이 있을까?

검찰은 자신들이 꿈꾸는 자유와 법치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검찰이 만들 수 없다. 시민과 정치가 할 일이다. 지금 검찰이 할 일은 검찰 주도 혁명이 아니다. 사과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 표시 SK와 애경이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지난 6년간의 헌법재판에서 싸워 이긴 피해자의 절규를 검찰은 또다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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