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대하여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오래전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커다란 비밀을 하나 알려주었다. “엄마, 엄마, 그거 알아? 저 커다란 나무 아래 저만큼 큰 나무가 거꾸로 서 있다는 거!” “응?” 땅 밑에는 말이야 저 나무랑 똑같이 닮은 나무가 있대, 나무의 뿌리는 안 보이지만 나무랑 같이 자라고 있대. 그러니까 뿌리는 땅속으로 자라는 큰 나무래. 와, 그렇구나! 땅 위의 나무와 땅속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어린이의 눈을 통해 세상이 새롭게 경이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근데 땅속은 얼마나 깊어? 하늘만큼 높아? 그래서 저렇게 커다란 나무만큼 땅속 나무도 계속 자랄 수 있는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거꾸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뿌리가 자랄 수 있는 깊이만큼만 지상의 나무도 성장할 수 있는 거라고.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우리가 ‘성장’이란 말을 떠올릴 때 연상하는 것은 대체로 좋은 의미의 성장이다. 이렇게 나무가 자라고, 아이가 자라고, 곡식이 자라는 것 말이다. 교육에서의 성장은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같은 성장에는 성숙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말이 경제와 붙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와 사태가 생겨난다. ‘경제성장’이란 말은 마치 경제가 나무처럼 자라서 더 많은 과일을 만들어낼 것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서 표상된다. 하지만 그건 왜곡된 표상이다. 경제성장의 성장이란 ‘시장의 성장’이고 ‘소비의 성장’이다. 경제성장의 지표로 널리 쓰이는 국민소득이나 국민총생산처럼 그것은 숫자를 통해 측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숫자의 성장’이다. 경제성장은 이 숫자가 자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숫자를 ‘자란다’라고 하는 것도 경제성장의 문법에서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경제성장은 자연의 성장 이치를 거스른다. 세상에 하늘을 뚫고 자라는 나무는 없다. 왜냐하면 지상의 나무는 뿌리보다 더 커질 수는 없으니까. 하늘이 아무리 무한하다 해도 성장하는 모든 생명은 땅이라는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숫자는 끝없이 자란다. 기업의 매출도, 수익도, 국가경제도, 해마다 계속 ‘성장해야’ 한다. 돈을 자라게 하는 성장의 경제는 무한히 팽창하는 공간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연에선 가능하지 않은 그런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장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극복해왔다. 지상의 모든 곳을 시장으로 집어삼키고, 지하와 우주까지 개발 경쟁에 나섰다. 하지만 지구의 한계를 넘어서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경제는 없다. 불타고 녹아내리며 지구가 신호를 알려주는 지금이 바로 그 한계다.

정치학에서는 성장이 아니라 팽창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가 경제에 대해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치적 관점으로 보면 ‘팽창’이다.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은 식민지의 팽창, 군사적 팽창 없이 불가능했다. 기업의 팽창도 마찬가지다. 1945년 이후의 세계체제는 만성적인 전쟁 상태다. 이처럼 경제적 성장주의와 정치적 팽창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팽창이란 말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성장이란 말에는 기대감을 갖는다. 팽창주의에서는 침략주의, 패권주의를 곧바로 연상하지만, 성장주의에서는 풍요와 편리, 문명과 발전을 떠올린다. 그래서 ‘탈성장’을 말하면 풍요와 편리, 문명과 발전을 모두 앗아가는 것인 양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성장주의가 팽창주의라면, 그것은 침략주의, 인종주의, 군사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성장을 멈추자는 것은 인간과 자연에 가해지는 거대한 폭력의 문명을 멈춰 세우자는 뜻이다. 다수를 희생시켜 소수가 성장을 독점하고, 소수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결핍과 불안에 시달리며 자유와 존엄을 박탈당해야 하는 불평등한 체제를 바꾸자는 뜻이다.

어린 돼지를, 태어난 지 180일 만에 상품으로 출하할 수 있는 무게로 만드는 것을 돼지의 성장이라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돼지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팽창된 것이며, 그의 삶은 추출되고 생명은 단축된 것이다. 오늘날 삶을 박탈하고 상품이 되기 위한 생명으로만 살게 하는 이런 일은 돼지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우리들,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높이에는 그만큼 깊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그 아이는 물었다. 그럼 12층의 지하에도 12층이 있는 거냐고. 대답하기 힘들었다. 우리를 지탱하는 지하는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몰라. 깊이 없는 높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다. 성찰해봤으면 한다. 제 발밑을 파헤쳐 풍요를 쌓아온 이 문명을. 지구라는 깊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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