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피폐화한 ‘통신사갑질보장법’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망사용료법을 주장하는 통신사들은 국내에 직접 접속하는 외국의 대형 콘텐츠제공자(CP)들에게만 돈을 받기 위한 것이므로 국내기업들과 개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망사용료법 법조문에 외국CP들에게만 적용된다는 문구는 없다. 당연히 국내CP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애써 외면하지만 2016년부터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시행되어온 발신자종량제 때문에 국내 인터넷접속료는 유럽의 8~10배, 미국의 5~7배 수준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인터넷접속료를 세계 최초로 국내CP들의 법적 의무사항으로 만드니 결국 망사업자들의 엄청난 폭리를 보장해주는 법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망사업자들이 요구한 접속료를 냈어도 액수가 정당하지 않았으면 역시 처벌당할 수 있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홍콩·도쿄에서 무상접속을 해놓고도 이제 와서 과거 일에 대해 돈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번 소송이 발생했다. 국내CP들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 통신사들은 ‘유럽의 8~10배’ 통계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들이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약관만 그렇지 (실제 약관비교: KT의 전용회선료는 AT&T의 20배) 실제로 자신들이 받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협상은 약관을 기준으로 진행된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게다가 법은 비대칭적이다. CP들에게만 돈을 내고 계약을 체결할 의무를 부과하고, 못하면 형사처벌하지만 망사업자들은 부당한 돈을 받았을 때 또는 계약체결이 안 되었을 때 아무런 책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CP들은 망사업자들의 갑질에 쉽게 굴복할 것이고 인터넷접속료는 지금보다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한국의 통신시장은 HHI(허핀달-허쉬만지수) 3600에 이르는 독과점화된 시장이다. 망사용료법은 망사업자들의 갑질할 권리를 더욱 보장하여 국내CP들을 피폐시킬 것이다. 비싼 인터넷접속료 때문에 서비스를 일부러 저질화시키거나 해외로 떠난 국내 인터넷기업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디지털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다.

대형 해외CP ‘망사용료’ 납부 강제도 한국크리에이터들을 피폐화시킨다. 우선 국내CP들과 비교하는 ‘무임승차’론은 궤변이다. 국내CP들은 ‘인터넷접속(전 세계 모든 컴퓨터와의 소통)’을 국내망사업자들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에 인터넷접속료를 내는 것이고 대형 해외CP들은 한국과 접속할 때 국내망사업자들의 망내 단말들과의 소통만을 제공(피어링)받는다. 물론 이때 돈을 내지 말라는 법도 없고 과거에 한 번 낸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한국 포함 세계 모든 망사업자들이 구글 넷플릭스와 무료접속을 하고 있다. 구글 넷플릭스가 사설CDN과 해저케이블로 망사업자들 코앞까지 콘텐츠를 끌어와서, 자신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끌어오려면 상위망사업자에게 냈어야 하는 인터넷접속료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유료피어링을 강제하면? 대형 해외CP도 트위치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트위치는 구글만큼 지명도가 높지 않으니 법통과 이전에도 자발적으로 유료피어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발신자종량제의 영향 때문에 피어링료가 종량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매우 비쌌을 것이다. 결국 트위치는 국내서비스를 저질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유료피어링이 법적 의무가 되면 구글,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한국 청중이 많이 보는 콘텐츠들은 기피하거나 유료화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한국으로의 직접접속을 중단하고 한국망사업자들이 알아서 콘텐츠를 한국에 끌어오도록 내버려둘 수도 있다. 결국 이들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내 크리에이터들이 국내 청중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저질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망사용료법을 거시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망만 소중하니 우리 망에 데이터가 들어올 때는 돈을 내라는 것 즉 통행세를 내라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통행세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한류콘텐츠가 해외로 나갈 때마다 현지의 망사업자들에게 피어링료를 내야 할 것이다. 법으로 강제되니 더 많이 더욱 엄격히 내야 한다. 한류가 길을 잃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도 쓰지 않는 ‘망사용료’라는 개념 자체이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든 망 유지비용만 분담하면 무제한으로 무료로 모두와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의 정보혁명이 가능했다. 망사용료법은 전화 우편의 시대처럼 통신한 만큼 돈을 받는 시대로 퇴보하겠다는, 발신자종량제로 일부 성사시킨 반혁명을 법으로 완성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발신자종량제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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