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박수’와 추임새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나 관객이 소리판의 흥을 돋우기 위해 곁들이는 감탄사를 추임새라고 한다. 소리꾼의 노래인 창(唱)과 사설인 아니리, 몸짓인 발림(너름새)과 함께 판소리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다. ‘얼쑤’ ‘조~타’ ‘자~알 한다’ ‘지화자’ 등. 북 반주자인 고수를 따라 하거나 관객이 제 멋에 겨워 수시로 내뱉는 이런 말들이다.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정재왈 예술경영가·고양문화재단 대표

노래와 아니리, 발림이 무대 주인공인 예술가의 몫이라면 추임새는 관객의 몫이다. 이처럼 공연 중에 적극적으로 관객의 개입이 허락되어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묶는 것은 판소리의 매력 중에 어쩌면 으뜸일지도 모른다. 등장인물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한 ‘판소리 음악극’인 창극에서도 추임새는 현장감을 고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 전통공연에서 관객을 그만큼 중히 여겼다는 방증이다.

공연에서 관객을 중심에 놓은 것은 서양극의 전통에도 부합하는 이야기다. 무대극을 대표하는 연극의 3요소는 관객, 배우, 무대다. 희곡을 넣는다 해도 관객은 필수요소로 굳건하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어떤 형태의 공연예술에서도 관객 없이는 공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극장을 뜻하는 ‘시어터’가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 객석인 ‘테아트론(theatron)’에서 유래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보기 위한 좌석, 그게 바로 테아트론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처럼 공연의 능동적 주체인 관객이 근현대에 매우 수동적, 피동적인 객체로 밀려난 데에 몇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공연예술의 표준으로 실내극장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특히 야외무대로 전승돼온 우리의 전통공연은 이 변화와 적응 과정에서 관객의 역할이 사뭇 축소됐다. 연극이나 오페라 등 극 중심 극장이든, 클래식 등 음악 연주에 특화된 음악당(콘서트홀)이든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엄격해지면서 거리감이 현격해졌다.

이처럼 일관된 실내극장화와 여기서 파생된 무대와 객석의 현격한 거리감은 공연 관람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연한 결과인 듯, 공연장이 마치 성스러운 신전처럼 되면서 누구나 편하고 즐거워야 할 공연관람이 엄숙한 의식을 치르는 의례(儀禮)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자발적 선택으로 그 순간 특권을 누리려는 관객의 욕망을 탓할 일은 전혀 아니다. 각자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관객은 공연예술 존재 그 자체이니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 공연관람 에티켓이다. 실외의 야외 공간과 달리 여러 사람이 운집한 실내는 남을 절대적으로 의식하고 배려해야 하는 공적인 공간이다. 소위 에티켓은 이런 공적 공간에서 요구되는 예의범절을 말한다. 판소리의 추임새는 그 자체가 판소리 공연에서 공인된 에티켓이다. 여기선 쑥스러워 그걸 못하면 에티켓을 지킨, 제대로 한 관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열린 형식의 판소리에서는 맘껏 소리를 지르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형 관객이 미덕이다.

반면 클래식 공연장은 이와 정반대다. 이곳은 박수 에티켓에 매우 예민하다. 극 중심 프로니시엄 무대만큼 연주자 무대와 객석의 단절이 현격하진 않지만, 여기서의 가장 큰 장벽은 소리(음향)다. 온통 소리로 뭉친 이 공간에서는 연주자와 그 연주자가 내는 소리는 물론 콘서트홀 그 자체의 잔향(殘響) 정도, 숨 숙인 관객들 전체가 예민한 악기가 된다. 다른 장르에 비해 관람 에티켓이 유독 까다로운 이유다.

이 민감한 클래식 세상 속에 ‘안다관객’이란 게 있다.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나 이거 알아”하는 식으로 잽싸게 열띤 박수를 날리는 관객을 빗대어 클래식에 정통한 관객이나 연주자들 중 일부가 비아냥으로 지어낸 말이다. 모르고 그리 한 관객에겐 모욕일 테지만, 허세를 작정하고 그리 한 사람이라면 잠시 참고 있다 연주자들의 인사 때 치는 ‘다함께박수’에 동참하길 권한다. 그 현장의 문화요, 에티켓이 그런 걸 어쩌랴. 요즘 관객에겐 박수만이 유일한 감동의 표현수단인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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