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커다란 질문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질문은 대화와 소통의 핵심적 요소이다. 물음표는 질문을 통해서 듣는 사람의 참여와 대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쌍방 간에 생성되는 질문과 답은 상호호환적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함께 바라보고 있는 문제상황을 명료화하고, 분석하며, 개선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질문은 의문에서 나온다. ‘의문’이 한 개인이 갖는 의구심이라는 심리적 상태인데 반해서, ‘질문’은 그런 심리적 상태가 대화를 통해 소통의 장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적극적 행동이다. 또한 의문이 비판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질문은 곧 비판적 행동일 수 있다.

그래서 권위적 사회일수록 질문은 저항의 상징이 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도전이 된다. 질문은 제한되고,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며,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알게 모르게 질문을 특화하고 권위화하며 억압하는 ‘질문의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 질문하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에 비대칭적 지배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질문의 정치학이 극단적으로 관찰되는 곳은 공교롭게도 학교이다. 학생은 교사에게 질문하기 위해 허락을 받으며,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시험은 질문과 답변을 조작적으로 작동시키면서 발산적 사고를 제한하고 정답으로 수렴되는 사고만을 허용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학교는 정답만이 존재하는 폐쇄된 사회이다.

학교에서의 시험문제는 예컨대 “조선은 언제 건국되었는가”라는 식의 사실에 근거한 단답식 문제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으며, 혹은 “조선은 왜 건국되었는가”라는 훨씬 복잡한 질문을 하더라도 그와 함께 제시되는 선택지들을 우스꽝스럽게 배치함으로써 포괄적 사고를 단편적 지식으로 분절하는 마술을 부린다. 혹은 수학이나 과학 등처럼 비록 겉으로는 복잡한 논리와 수식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각종 조건문과 논리제한을 통해서 답이 하나밖에 나올 수 없는 문제로 단순화시켜버린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놓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질문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차원을 묻거나 혹은 서로 합의하기 어려운 쟁점을 다루는 질문들일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에는 왜 공룡이 살고 있지 않는가” “나무도 생각할 수 있을까” 혹은 “지금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인가” 등의 경우이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설정한 답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온갖 생각들을 동시에 소환하고 재배열하고 타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답이 없는 문제가 가장 교육적인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수업 중에도 회피대상 1호가 될뿐더러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들, 예컨대 수능이나 기말고사 등에 출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학교는 복수의 정답이나 애매한 답이 될 수 있는 질문들을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도 자신들이 복잡한 문제를 다루더라도 반드시 하나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역산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트랩 안에 갇히게 되고, 학교교육은 현실의 복잡성이나 불확실성과는 동떨어진 형식환원주의적 논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학교는 폐쇄사회가 되고, 학생들은 그 포로가 된다. 오랫동안 학교는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토끼몰이’ 해왔고, 그 결과 답이 없는 문제들을 대할 때마다 스스로 왜소함을 느끼고 회피하는 순치된 인간들이 양산되었다.

답은 과거이며 질문은 미래이다. 정해진 답으로 회귀하는 과거형 교육과정과 수업모형을 어떻게 폐기할 것인가의 문제는 학교개혁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사회개혁의 기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학교가 주입한 이러한 소통방식은 성인기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의문을 갖는 것을 불편해하고, 지배적 문화가 정해준 답에 의지해 역산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삶 전체를 지배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지난 10여년간의 혁신학교 운동이 질문과 답이라는 학교 소통의 기본 관계를 바꾸어 놓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혹은 자사고나 특목고의 성과를 판단하는 데에도 이 문제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단언컨대, 질문은 변화를 촉발한다. 질문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소통방식을 바꾸며, 그 안의 모순을 드러내는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교과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교개혁은 발산적으로 질문하는 문화를 허용하는 데에서 시작되며, 평가문항들도 이런 질문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질문을 촉발했으되, 그것이 단지 정해진 답으로 가는 길찾기로만 활용되는 방식도 피해야 한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