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의 실상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카카오 서버가 있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지난 15일부터 카카오톡은 물론 카카오의 대다수 서비스가 24시간 넘게 장애를 겪었고, 티스토리 등 일부 서비스는 만 이틀이 지나도록 정상화되지 못했다. 거의 전 국민이 이용하는 카카오의 서비스 장애가 발생하면서, 데이터센터도 정부의 통신 재난 방지 관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2018년 11월 KT 아현 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사건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 5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서버·저장장치 등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도 관리 대상에 포함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들이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했고, 이에 동조한 여야 의원들이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한 ‘이중 규제’라고 반대해 결국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바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카카오 먹통 사태로 국민의 분노가 치솟자, 국회는 최태원 SK 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여야가 이들을 증인으로 부르기에 앞서, 데이터센터를 통신 재난 방지 관리 대상에 포함하려던 입법을 무산시켰던 20대 후반부 법제사법위원회에 대한 조사를 시민사회와 전문가 그룹에 의뢰하는 결의부터 해야 했다. 그래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카카오는 똑같은 데이터를 하나 더 복사해 놓는 이중화 조치를 자율적으로 취해뒀기 때문에 데이터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 복구용이라는 뜻의 DR(Disaster Recovery)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시스템을 하나 더 마련하는 이원화 조치를 의미한다. 이원화는 기존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다른 곳에 있는 쌍둥이 시스템으로 빠르게 전환해 가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이원화는 이중화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 카카오는 그동안 재난대응 투자라는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인수·합병으로 사업 분야를 빠르게 확장하며 덩치를 키웠다. 카카오는 지난 8년간 연평균 회사 13.5개씩을 늘려, 올 6월 기준으로 국내외 계열사 187개를 거느리고 있다. 온갖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지네발식 확장을 한 것이다.

이런 지네발 확장은 결국 우리 법제도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그런 방향으로 유인을 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비용이 드는 이원화 조치를 강제하지 못했고,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금지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경영자의 자율이나 양식에 호소하는 자율규제의 실상은 공익을 저버린 정부의 실패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카카오톡 먹통 사태와 관련해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라는 ‘미신’에서 벗어나 디지털 경제와 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규제의 틀을 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임을 이제라도 윤 정부가 이해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당장의 국민적 분노에 편승해 책임을 떠넘기는 임시방편일까? 두고보면 알 일이다.

디지털 경제와 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규제를 위해서는 데이터센터를 통신 재난 방지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가통신서비스 및 기간통신서비스 분류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금지하고 알고리즘 투명성을 확보하는 규제원칙을 담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EU는 다음달부터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 빅테크에 적용되는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한다. DMA를 적용받는 기업들은 자사 제품, 서비스에 높은 순위를 부여할 수 없고, 소비자들이 새 스마트폰을 구입했을 때 특정 검색엔진 혹은 웹 브라우저만 쓰도록 강제해서도 안 된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는 작년 6월에 민주당과 공화당 하원 법사위 의원들이 ‘더 강력한 온라인 경제: 기회, 혁신, 선택을 위한 반독점 어젠다’라는 명명하에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총 5개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디지털 경제와 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규제를 위해서는, 시가총액, 최근 3년간 연 매출액, 월간 이용자 수에 대한 기준을 우리 실정에 맞게 설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키퍼(문지기)’로 지정해 의무 사항을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막대한 과징금 부과 및 기업 분할 등 다양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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