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석탑과 20세기의 기억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 미륵사지석탑과 20세기의 기억

언제부턴가 전북 익산시의 심벌마크에 눈길이 갔다. 익산의 대표 문화재인 미륵사지 석탑을 이미지화해 디자인한 것이다. 그런데 심벌마크 속 미륵사지 석탑은 온전하지 않다. 탑의 한쪽 옥개석들이 아래로 기울어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다. 그 옥개석의 기울어진 선(線)을 익산의 ‘益’자와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 심벌마크에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옥개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미륵사지 석탑을 어떻게 기억해왔을까. 흔히 이 탑을 두고 7세기 백제의 석탑, 현존하는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석탑,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석탑으로 설명한다. 그렇다. 하지만 기억의 측면에서 보면, 더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탑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그 위태로운 부분이 콘크리트로 덧씌워져 있는 모습이다. 20세기 우리는 미륵사지 석탑을 이런 모습으로 만났다.

원래 9층이었던 이 탑은 17세기 전후에 무너져 내렸다. 꼭대기 3개 층(7~9층)은 모두 사라졌고 1~6층도 4개 면 가운데 3개 면의 상당 부분이 무너졌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이 탑을 조사한 뒤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 그때 더 이상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너진 1~6층의 3개면(서면, 남면, 북면)에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를 덧붙였다. 그때부터 미륵사지 석탑은 안쓰러운 콘크리트 탑이 되었다. 이 석탑은 2001년까지 이런 모습이었다. 동쪽에서는 석탑의 육중한 외관(비록 윗부분 3개 층이 무너졌지만)을 볼 수 있었지만, 서북쪽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그러나 계속 콘크리트 상태로 둘 수는 없었다. 여러 문제점이 발생했고 치열한 논의와 오랜 준비 끝에 2001년 해체·수리·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2019년 그 작업이 마무리되었고 미륵사지 석탑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벗어던지게 되었다.

2주 전, 미륵사지 석탑을 찾았다. 해체 이전에도, 복원 이후에도 여러 차례 만난 탑이지만 이번 만남은 느낌이 좀 달랐다. 익산시 심벌마크의 무너지는 듯한 옥개석이 떠올랐고, 86년 동안 이어져온 콘크리트 덩어리의 석탑 모습도 떠올랐다. 미륵사지 석탑의 콘크리트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1915년 일제가 미륵사지 석탑을 긴급 보수하면서 당시 최신 토목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점, 그런데 그것은 식민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점, 결국 그것이 탑에 해를 끼쳤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콘크리트는 이렇게 미륵사지 석탑의 20세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건 미륵사지 석탑의 상흔이기도 하다. 미륵사지의 콘크리트 석탑을 우리는 20세기 내내 지켜보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콘크리트는 미륵사지 석탑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제 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해체 직전 6층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우리의 문화재 보수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콘크리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기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콘크리트가 시야에서 사라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보니 미륵사를 찾는 개개인의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좀 아쉬웠다.

미륵사지 석탑 바로 옆에는 국립익산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는 미륵사지 석탑을 축소해 만든 모형이 전시 중이다. 이것을 통해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직전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지만, 다소 정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적극적으로 미륵사지 석탑의 20세기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콘크리트는 미륵사지 석탑의 20세기를 기억하는 강렬한 상징물이다. 백제 석탑에 20세기의 상흔이 담겨 있으니, 이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근대의 흔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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