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대책, 증세는 어떠한가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인플레이션 대책, 증세는 어떠한가

인플레를 금리 인상으로
관리한다는 낡아빠진
통화주의 경제학의
‘죽은 경제학자들’로부터
풀려날 때가 되었다

주류 경제학에 맞서온
‘현대화폐이론’ 학파는
현재의 인플레에 대해
증세 및 재정 구조 전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적극적이고 미래적인
산업정책 구사를 권한다

미국 ‘인플레 감축법’도
그 핵심은 바로 증세다

인플레이션 대응책으로서의 금리 인상 정책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물론 물가상승률만이 아니라 환율 문제도 관리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미국 중앙은행으로부터 독립되지 않았으므로”(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황새를 따라가는 뱁새’의 가랑이가 언제까지 버텨줄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은 이미 미국 재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가 관리를 위한 금리 인상에 있어서 미국보다 더욱 ‘매파’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캐나다 중앙은행이 이번에 드디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인플레이션 대책으로서의 금리 인상이 지속가능한 것일까? 그 회의론의 논리를 들어보자. 첫째, 이번 인플레이션은 공급/비용 측의 원인이 절대적이다.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소비 욕구가 과도하여 생길 수도 있지만(수요 측), 지정학적 불안정에 의한 에너지, 식량, 원자재 등의 가격 상승에서(공급 측) 생겨날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금리 인상이 주효한 대책이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사실 별 소용이 없다. 물론 어떤 원인에서이건 사람들이 일단 물가 인상을 예측하는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가 발동하게 되어 있으며, 현재의 금리 인상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중장기적 혹은 근원적 대책으로서 옳은 것일까?

둘째, 인플레이션은 절대로 ‘화폐적 현상’이 아니다. 물가 인상의 충격과 피해가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고르게 가해지기는커녕, 이 틈을 타서 오히려 큰 이익을 보는 세력과 극심한 타격을 입는 세력 특히 저소득층 서민들에게 불균등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모든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비용 지출을 강요하는 일종의 ‘정률세’와 같아서, 인플레이션의 극심한 불평등 효과를 증폭시키게 된다.

셋째,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경기 침체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산업구조의 전환에 찬물을 끼얹어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파괴한다. 주지하듯이, 기술주 관련 업체들은 계획하는 사업이 실제 수익으로 연결될 때까지의 시간을 기약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본 조달 비용 즉 금리에 아주 민감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고금리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래를 향한 과감한 혁신적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후과는 오래도록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넷째, 폭발 직전의 부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레버리지 경제’ 체제로 인해 어느 나라이건 자본주의의 긴 역사 속에서 총생산 대비 총부채의 비율이 지금처럼 높은 적은 없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거품 붕괴 사태에서 보듯, 이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것은 방바닥에 가솔린이 흥건히 깔려 있는 상황에서 부싯돌을 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섯째,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경우 금리를 도대체 어디까지 올리겠다는 것인가? 위의 원인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첫째와 넷째를 감안한다면 금리 인상에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금리 상한선이 그 한계에 도달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계속해서 기승을 부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시작해야 할 시점은 지금

인플레이션을 금리 인상으로 관리한다는, 낡아빠진 1970년대 통화주의 경제학의 ‘죽은 경제학자들’로부터 풀려날 때가 되었다. 대안적 정책으로서 감세가 아닌 증세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첫째, 사람들 심리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문제라면, 증세 또한 금리 인상과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당장 부가가치세와 같은 소비 관련의 간접세를 한시적으로 올리는 방법이 있다. 이자나 세금이나 똑같은 ‘비용’이다. ‘가격으로의 비용 전가’는 금리 인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모든 채무자들에게 똑같은 비율의 희생을 요구하는 금리 인상과 달리, 조세정책은 강자와 약자 그리고 살리고 북돋아야 할 활동들과 억제해야 할 활동들을 나누어 관리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서 에너지정책의 경우를 보자. 지금 채권시장 교란의 큰 원인이 되고 있는 한국전력 적자 누적은 등귀하는 에너지 원가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전력 가격을 인상하고, 거기에 취약한 집단이나 취약해져서는 안 될 집단들에 (산업정책)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기후위기와 탄소 절감의 산업 및 사회 전환을 위해서도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중장기적인 원가 불안정이 예고되는 상황에서는 일괄적으로 전기료를 낮게 유지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선별적인 대처의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조세정책을 전환한다면, 경제적 약자들과 미래 희망이 되는 성장 산업 등을 일괄적으로 희생시키는 금리 인상 정책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될 것이다.

셋째, 증세를 통한 국가 재정의 확보는 지금 화약고가 되고 있는 국가 총부채의 구조 조정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나라에 따라서 부채의 구조는 달라서, 민간 부채가 상대적으로 적고 국가 부채가 큰 나라도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후자의 경우로서, 기업 특히 가계부채는 세계 최상위권에 있지만 (좁은 의미의) 국가 부채는 상당히 건실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이 세계적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때에는 이러한 국내 총부채의 구조를 조정하여 민간 부채에서 아주 위험이 큰 부분은 적극적으로 국가 부채로 전환시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큰 덩어리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19세기에나 통용되던 ‘균형 재정/작은 재정’의 신화를 고집하여 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민간 부채를 방치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윤 정부는 ‘감세와 균형재정’ 고집

넷째,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악화될 가능성을 본다면 이러한 전환은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물가인상률을 대처할 수 없는 ‘천장’에 도달할 경우라 해도, 환율 등의 문제로 고금리 상황은 일정 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당길 수 있는 레버를 끝까지 당겼는데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될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방금 나열한 새로운 재정정책은 많은 고민과 준비 나아가 사회적 합의까지 필요한 것이므로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몇 명이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은 지금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주술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주류 경제학에 거세게 맞서온 ‘현대화폐이론’ (속칭 MMT) 학파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는 것에 계속 회의를 표했으며, 대신 증세 및 재정 구조 전환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재원으로 적극적이고 미래적인 산업정책을 구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글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현대화폐이론’ 학파가 힘을 잃었다는 칼럼이나 언급이 가끔 보이지만, 이는 그 학파의 주장을 ‘정부는 인플레 걱정 없이 돈을 막 풀어도 된다’는 황당한 방식으로 곡해한 결과로 보인다. 오히려 이들이 줄곧 주장해왔던 인플레이션 대책으로서의 증세와 적극적 노동 및 산업 정책의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미국 하원의 예산위원장인 존 야무스 의원은 명시적으로 ‘현대화폐이론’ 학파를 언급하면서 그와 궤를 같이하는 생각을 토로한 바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현실을 다루는 이들은 탄력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에 통과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보자. 핵심은 증세이다. 부유층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4200억달러의 증세를 이루어 이를 전 국민을 위한 약값 보조와 미래형 산업정책에 쏟겠다는 것이 그 전체의 내용이다. 몇 달 전 기세등등하게 마거릿 대처 수상 흉내를 내면서 들어선 영국의 리즈 트러스 내각이 어처구니없이 ‘감세’를 내걸었다가 어떤 민폐를 낳고 어떤 수모를 당하면서 무너졌는지와 비교해보라. 인플레이션은 경제학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문제이며, ‘해도가 없는 바다’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은 2025년까지 ‘감세와 균형 재정’을 이루겠다고 계속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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