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다

1.5도나 2도 상승은
돌이킬 수 없는 미래로
달성 시점도 2050년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또한 이상기후도
더 빈번하고 극악스럽게
나타날 일만 남은 게 사실

지난 7월 빌 맥과이어의 저서 <찜통 지구(Hothouse Earth)>가 출간되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시급한 행동을 촉구하는 책은 지금까지 많았지만, 이 책이 주는 울림은 새롭다. 용감하게도,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온 “평균 기온 1.5도 상승 예방”이라는 목표가 이미 실패한 것이 거의 확실하며, 2040년 즈음에는 2도 상승까지 벌어질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저자인 맥과이어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명예교수로서, 화산 연구를 중심으로 지질학과 지구의 기후위기 전반을 연구한 권위자이며 IPCC(정부 간 기후문제 자문기구)의 보고서의 최종 요약본 집필에도 참여했던 이이다.

그가 내놓는 데이터들과 참고로 한 연구들은 2021년의 26번째 파리 기후 협의회 이후의 것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믿을 수 있는 과학자의 필치로 과장없이 가감없이 기후위기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그런 그의 핵심 주장은 간명하다. “1.5도 심지어 2도 상승의 사태는 피할 수가 없다. 지금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가오는 기후위기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여기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때이다.”

이 1.5도라는 숫자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효과보다는 “그 안에서 막으면 된다”는 기묘한 안심감을 심어주는 모종의 “가드레일”과 같은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드레일”은 거의 확실하게 부수어 질 것이며, 지구 전체는 알지 못할 불확실의 위험천만의 미래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탄소 순배출 제로” 등을 통해 1.5도 상승으로 막을 수 있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일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류 전체가 2030년까지 현재의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심히 의문스러운 목표이다. 실제로 현재의 추세를 볼 때, 2030년의 결과는 오히려 탄소 배출량의 14% 상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그렇다면 1.5도 상승 그리고 2도의 상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미래로 자리잡은 셈이며, 그 상승의 속도가 현재 보이고 있는 가속도로 볼 때 그 달성 시점도 2050년보다 훨씬 빨라질 것으로 보는 게 정직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된 지 꽤 되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상 기후”라고 생각하는 현상들(올여름 중부권을 덮친 ‘114년 만의 호우’, 유럽에서의 과열 기후 등)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현상이며, 1.5도/2도의 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이 된 지금,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더욱 극악스럽게 나타날 일만 남았다는 게 솔직한 진실이라고 한다. 기후위기는 “기후” 위기가 아니다. 해수면 상승과 해안 도시의 지반 침하, 강물의 범람과 고갈, 식량 및 농업 위기, 콜레라 등 각종 질병의 창궐, 심지어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무서운 지각 활동의 증가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서식지” 전체를 뒤흔들어 버리는 총체적 위기이다. 지금 열거한 현상들뿐만 아니라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 일파만파로 함께 벌어질 다른 현상들까지 생각하면, 1.5도/2도 상승의 앞날은 어두운 것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2100년엔 인류 20%가 기후 유랑민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기후위기를 일부 자연과학자들이나 관련된 기술 관료들만의 고민거리로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변화는 지구적 산업 문명의 근간을 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무수한 기후난민들(혹은 “기후 이민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한 예로 힌두쿠시-히말라야의 빙하의 앞날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세계 인구의 최대 밀집 지역이라고 할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사람들의 삶은 황허강, 양쯔강, 메콩강, 갠지스강, 인더스강이라는 다섯 개의 큰 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다섯 개의 강 모두의 발원지가 힌두쿠시-히말라야 인접 지역이며, 여기에서의 빙하의 변화는 이 강들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급속히 진행되는 해빙으로 인하여 이 나라들은 강물 유량의 극심한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으며, 몇년 전 중국처럼 대규모 댐이 붕괴할 뻔한 끔찍한 홍수도 나타나고 있고, 이 때문에 이 강들의 조절을 놓고 여러 나라들 간의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살 곳을 잃고 떠돌게 될 전 지구적인 유랑민들의 숫자에 대해 한 보고서는 2060년 12억명, 2100년에는 2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100년에 지구 전체의 인구가 100억명 정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5명 중 1명이 기후 유랑민이 되는 그림이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울림이 깊고도 크다. 다 끝났으니 포기하자고 말하기는커녕,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규모의 변화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예정된 기후위기 악화에 대한 적응”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지구에 수억명에 달하는 유랑민들이 떠돌 것이며, 각국 내에서는 생태 및 경제적 위기의 심화로 사회·정치적 위기가 극심해질 것이다. 게다가 토지나 수자원 등은 물론 니켈, 코발트 등과 같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희소 자원들에 대해 강대국들의 확보 노력과 보호주의가 극을 달리게 될 것이며, 이것이 심각한 지정학적 갈등으로 치닫게 될 것임은 우리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도한 바가 있다. 이렇게 갈가리 찢어진 사회에서, 박탈감의 상태에 처한 다수 대중의 분노와 좌절을 토양으로 삼아 강력한 보호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우익 포퓰리즘 독재가 전 세계를 휩쓸게 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1.5도/2도 상승이 자연과학자들이 말하는 우리의 거의 “예정된 미래”라면, 방금 말한 것들은 사회과학자들의 상식으로 볼 때 거의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예정된 미래”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전문가나 관료 등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꾸어
적응해 나가야만 할
거의 정해진 운명이라고

범지구촌적으로 풀 최고의 공공선

이제 기후위기는 먼 곳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석유와 석탄 대신 배터리만 갈아끼우면 되는” 기술적 문제만도 아니다. 다가오는 대규모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수백만명의 난민들이 몰려올 때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가 기후난민이 되어 동북삼성이든 어디든 이주해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제 우리는 지구적 산업 문명 차원에서 “어떤 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의 문제도 구체적,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은 누구이며, 자연과 우주 속에서 어떤 존재이며, 서로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풀어야 하므로, 인문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이렇게 따로 갈라볼 문제가 아니라, 여러 분과학문들이 함께하고 여기에 우리 사회를 살고 만들어가는 주체인 더 많은 평범한 시민들도 참여하여 구체적인 방안과 대책을 논의해야 할 최고의 ‘공공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양치기 소년’의 또 하나의 외침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전 무지막지한 폭우로 하수도 뚜껑이 날아가고 폭포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면, 이러한 사태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이제부터 갈수록 빈번하게 벌어질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미 오랫동안 누적된 식량 농업의 위기로 인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으로 장을 보러갔다가 낭패감에 젖었다면, 천연가스와 에너지 체계를 놓고 강대국 고래들이 싸우는 통에 난방비 전기값을 뒤집어쓰게 생겼다는 것을 직시한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는 놀랍게도 기후위기에 대처한 정책들(예를 들어 노후 건물들의 리모델링과 신규 건물의 에너지 절감 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책 저자인 빌 맥과이어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자 한다. 이제 기후위기는 자연과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 및 관료들이 알아서 할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 전체를 총체적으로 바꾸어 적응해 나가야만 할 거의 정해진 운명이라고.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