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라기엔 부끄러운 한국과 대통령의 품격

안호기 논설위원

선진국에 대한 기준은 명확지 않다. 보통은 경제력 강한 국가를 일컫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1위 중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GNI)이 10만달러를 넘는 버뮤다, 군사대국 러시아 등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제가 중요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시민 삶의 질이 높고 글로벌 책임을 이행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주요 7개국(G7,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은 모두 선진국이지만 범위가 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과거 선진국 클럽으로 불렸으나 회원국을 늘리면서 개발도상국이 다수 참여해 지금은 달라졌다. 한국이 포함된 G20은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들도 있어 순수한 선진국 모임이라고 하기 어렵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해 7월 한국을 선진국 그룹에 편입했다. UNCTAD는 회원국을 A(아시아·아프리카), B(선진국), C(중남미), D(러시아·동구) 등으로 분류하는데, A그룹에 있던 한국을 B그룹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는 세계 10위이고, 1인당 GNI는 24위, 무역규모는 8위에 자리했다. 군사비와 병력, 전투기, 전차 등을 고려한 군사력은 6위권으로 평가된다. 유엔 195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선진국 그룹 32개국에 들어간 것은 이상하지 않다.

미국의 ‘US뉴스’가 커뮤니케이션 기업 BAV그룹,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과 공동조사해 발표한 ‘2022 최고의 국가’에서 한국은 85개국 중 20위였다. 항목별 순위에서는 국력과 기업가 정신이 각각 6위, 문화적 영향이 7위로 상위권이었다.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D램의 70%, 낸드플래시의 절반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생산한 것이다. 오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절반가량도 한국 조선소에서 만들었다. BTS와 블랙핑크의 K팝과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낮은 평가를 받은 세부 항목이 적지 않았다. 성평등, 인종차별, 임금격차, 기후변화 방지 노력, 동물권 보호, 정부정책 투명성 등에서는 100점 만점에 10점 내외에 그쳤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서도 한국은 경제력 관련 항목은 높은 수치를 기록한 반면 도덕성이나 포용성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146개국 가운데 59위였는데, OECD 회원국으로만 보면 최하위권이다. GDP와 기대수명 항목에서는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부정부패, 관용 등의 항목에서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에 걸맞은 품격은 갖추지 못했다.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하느라 내면을 돌보고 성숙시킬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US뉴스가 최고의 국가로 꼽은 스위스는 가족 친화, 성평등, 사회정의에 대한 헌신, 환경에 대한 관심 등 ‘삶의 질’과 ‘사회적 목적’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였다. 경제적 풍요 못지않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지도자(리더)가 더 낮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모닝 컨설트’가 전 세계 주요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지율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또 꼴찌였다. 11월2~8일 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은 지지율 20%로 22개국 지도자 중 가장 낮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태원 압사 참사 후 ‘핼러윈 비극이 세계에서 가장 비호감인 지도자에게 시험대가 됐다(Halloween Tragedy Is a Test For the World’s Most Disliked Leader)’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미국에서 비속어로 이미 글로벌 망신을 샀던 윤 대통령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및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순방에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아 비호감도를 끌어올렸다. 부인 김건희 여사는 현지에서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 불참한 채 개별 일정을 진행했다. 김 여사에게 ‘오드리 헵번 따라하기’ 비판이 일자 여당 중진 의원은 “대통령 부인 중에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나”라고 치켜세웠다.

윤 대통령 임기는 이제 갓 반년을 지났을 뿐이고 4년 반이 남아 있다. 언제까지 주권자 시민에게 부끄러움을 떠넘길 텐가. 밑바닥까지 갔으니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기저효과라는 용어를 주술처럼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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