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회색 코뿔소’를 바라보기만 할 텐가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가깝게 지내던 선배들이 정년을 맞아 회사를 떠나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주민등록상 만 60세가 되는 달의 마지막 날’이 정년퇴직일이어서 매달 퇴직자가 나온다.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해방됐으니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지만 씁쓸하다. 변변한 소일거리조차 없는 백면서생 같은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하거나 꼼꼼하게 노후 대비를 한 일부는 다를 것이다. 곧 내 차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별다른 대비는 하지 않으니, 필자도 백면서생류가 분명하다. 커다란 덩치의 ‘회색 코뿔소’가 달려오는 걸 그저 보고만 있는 것 같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생명표’를 보면 60세 한국인은 남자 23.5년, 여자 28.4년 등 평균 26년을 더 산다고 한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30년 남짓 일하고 퇴직하는데, 퇴직 전 일한 기간만큼 더 산다는 뜻이다. 1970년 60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15.9년이었다. 50여년 사이에 기대여명이 10년가량 늘었다.

과거에는 60대가 되면 노인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청년 못지않은 체력과 열정을 지닌 60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본인이 아무리 젊다고 자신하더라도, 남들이 늙었다고 하면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50대 고참 부장급 이상은 더 이상 뜀박질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노친네’였다. 과거의 정년은 55세 안팎이어서 지금처럼 임금피크제에 걸린 50대 후반도 없었다.

오래 사는 게 축복만은 아니다. 건강해야 하고 적당한 소득과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병에 시달리고 가난한데 오래 살기만 한다면 노인에게는 재앙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노인 소득 빈곤’ 보고서를 보면 37개 회원국의 65세 이상 노인 13.1%가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소득빈곤층이었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은 43.4%로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은 55.1%가 빈곤 상태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75세 이상 노인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은 언제 고갈될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최근 분석을 보면 2021년 결산 기준 국민연금은 2043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7년이면 적립금이 소진된다고 한다. 현행 국민연금 체계를 유지한다면 올해 만 30세인 1992년생은 2057년 연금 수령 자격이 생겨도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저출생으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연금 납부할 시민은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연금 받는 노인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 3분기 0.79명까지 떨어져 세계 최저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 수는 올해 기준 24.6명이다. 2060년이면 91.1명까지 늘어난다. 일하는 사람 1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적연금 개혁 논의를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금이 고갈되는 사태를 막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늦추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이들의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65세인 노인 기준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명시된 후 40년 넘게 변치 않고 있다. 70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허다하고, 일부 학자들은 ‘기대수명-15세’를 노인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늘어난 평균수명을 반영하지 못하는 노인복지법과 국민연금법 등 노인의 법적 기준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인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바꾸면 올해 고령인구 비율은 17.5%에서 11.5%로 떨어진다. 노인 인구 비중이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아니라 한 단계 아래 7~14% 미만 고령화사회로 분류되는 것이다. 20% 이상 초고령사회 진입도 2025년에서 2033년으로 늦춰진다.

노인이 더 오랜 기간 일하고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할 것이다. 정년 연장과 노인 고용 확대 등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세계에서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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