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세월호 참사 속 10대를, ‘사회적 거리 두기’ 속 20대를 보냈던 청년들은 올해서야 집 밖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10·29 참사를 겪으며 또다시 어울림의 두려움을 느꼈다. 교류가 아닌 고독이 생존의 규칙이 되어버렸고, 함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잊었던 트라우마가 재현됐다. 그 어떤 세대도 반복적으로 경험한 적 없었던 가혹한 가르침이었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발길을 잃고 마음이 얼어붙은 또래 다수는 저마다 외로운 소수로 남기를 택했다. 그들은 반복된 죄책감과 분노 속에서 침묵과 고립을 택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가 없다’며 사법화된 정치적 해명을 마주하고, 이태원 참사 속 여성 희생자가 더 많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에 ‘애초에 여성이 더 많이 놀러 갔다’며 신체적 취약성의 맥락을 소거하는 전문가의 진단을 들으며 소통을 잃고 잊기로 결심했다.

취약한 청년들에게 닥쳐온 재난의 아픔을 개인화하는 데 익숙한 ‘어른들’의 사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계적인 절차와 공정의 논리로 치안을 유지했다. 보편이라 일컬어지는 집단적 감각, 집단적 논리는 주로 이태원 문화를 향유하지 않는 세대들이 정의할 수 있었기에, 그곳의 분위기를 체감하는 이들은 모두 예외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10·29 참사의 ‘정치’는 다수 세대의 치안 규칙을 따르는 논리 아래 판단되었다. 사회적 참사 뉴스의 대미가 늘 ‘구속’ ‘수사’ ‘체포’ ‘불법’ 논란으로 장식되는 것을 볼 때면, 목소리를 잃은 몫 없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누가 잡히거나 풀려날 것인지’에 관한 전망을 분석하는 데 괴리감을 느꼈다. 참사 현장에 대한 수습은 마치 격투기 중계처럼 이루어졌다.

10·29 참사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네 책임인지 내 책임인지 ‘총리부터 일선 경찰관까지’ 시시비비를 따지는 뉴스를 수도 없이 본 것 같지만,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기 위한 노력을 기록한 뉴스를 본 기억들은 없다. 아주 가끔 목격한 몇 번의 사과라고는 특수본 조사 직전 발언, 국회 현안 질의 출석 직전 발언 같은 관계자의 방향 잃은 의례적 심경 표현뿐이었다. 정치적 권한과 책임을 지닌 어른 모두 제도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사관과 재판관 역할만 몰두할 뿐, 무력감을 뚫고 간신히 분출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참사 수습 과정에는 정치적 유산자가 과연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인지 논하는 법리만 존재할 뿐, 몫 없는 자들을 위한 정치는 없다. 민주정치와 사법수사의 차이점을 찾기 힘든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위로와 소통이 유죄의 알리바이가 될까 움츠린 이들은 입을 열지도, 만나지도, 듣지도 않고 있다. 보고 듣는 책임자가 없어 말하는 이도 자취를 감췄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참사의 정치를 사법 도구로 이용하는 동안, 위로와 경청의 본질적 정치는 의미를 잃은 채 무력해지고 있다. 어른이라 일컫는 정치인과 언론인, 수사관들은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노래를 점심시간마다 반복해서 듣는 학생들의 공허한 슬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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