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같은 정치’, 사회를 분열시키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 ‘전쟁과 같은 정치’, 사회를 분열시키다

21세기 사회적 통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우리는 지금 ‘분열 사회’에서 살고 있다. 시대 전환을 초래한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적 위협으로 사회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자체적으로 붕괴하는 ‘내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빈부의 격차, 농촌과 도시, 청년과 노인, 젠더 또는 정체성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으로 표출되는 ‘사회 분열’은 우리 시대의 징후처럼 보인다. 이러한 분열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일상화되고 평범화되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정말 분열된 것인가? 이 질문 자체가 어이없게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사회 분열’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분열과 대립이 정치적 숙명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사회통합은 헛된 희망처럼 보인다. 실현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간절히 바라는 신년의 각오처럼 한국 사회의 새해 소망은 그래도 혐오와 분열을 끝낼 수 있는 통합 정치를 꿈꿔본다. 분열 사회의 위험과 심각성을 인식하려면 우선 그 진단이 정확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평등과 평화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사회는 본래 갈등과 불평등으로 구성된다. 갈등과 불평등 자체가 사회를 분열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이 있다고 해서 ‘분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성급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 간의 경쟁과 갈등은 당연한데 우리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인가? 정치적 현실만 보면 ‘분열 사회’가 결코 쓸데없는 단순한 우려가 아님이 분명하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자면 한국 정치가 분열된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한국 정치가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혐오와 분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년인사회에 불참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동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이 일은 우리 정치에 관례적이고 형식적인 대화의 장치마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정치가 실종되면 진영의 깃발만 더욱 요란하게 펄럭인다.

정치 실종되며 진영 깃발만 ‘펄럭’

한국의 극단적 혐오정치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은 흥미롭게도 틈만 나면 민주주의를 언급한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 매우 당연한 이 말도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만남에서 나오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감각과 우려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킨 게 문재인 정권이었다는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임기의 첫해를 보낸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는커녕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분열과 분노의 정치를 끝내겠다는 말은 이미 실속이 없는 빈말이 되었고, 도어스테핑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파격적 소통 방식은 새로운 불통의 실마리가 되었다. 법치와 민주주의의 위기 담론으로 정권을 얻은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극단적 대립정치가 우리 사회를 두 동강으로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정치적 입장이 설령 다르더라도 대화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지지 정당이 다르거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사람들은 서로를 불편해한다. 단순한 교제나 비즈니스와 같은 비정치적 이유로 만날 수밖에 없으면 정치는 말해서는 안 되는 터부가 된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같지 않으면 말을 섞기도 싫은데 하물며 술과 식사 자리를 함께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결혼도 꺼려질 정도로 사랑도 결코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넘지 못한다. 화목한 가족의 식탁에서도 정치 얘기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적지 않다. 사회를 두 동강 내는 것은 바로 정치인 것이다.

우리가 ‘분열의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가 완전히 분열된 것은 아니다. 북아일랜드처럼 완전히 분열된 사회는 어떤 진영(교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양육, 교육, 취업과 사회적 활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분열된 사회의 이미지는 소수의 집단이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대립하는 집단과 진영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이 진영은 우리에게 뚜렷한 색깔과 정체성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대 그룹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는 배신에 해당한다. 친구, 친척, 정치적 동지 및 비즈니스 파트너를 소외시키지 않는 방법은 같은 진영에 속하여 다른 진영을 언제든지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열의 경향이 임박하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분열은 물론 극단적 갈등의 결과이지만, 모든 갈등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압박하는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은 모두 어느 정도의 차이를 전제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사회 분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차이와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는 정치적 제도이지 않은가? 평화는 결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시민의 동질성에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의견으로 통일된 곳에는 정치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 갈등이 없는 통합은 하나의 의견만 절대화하는 전체주의의 유혹일 뿐이다.

사회가 다양해져 정치 복원해야

갈등 사회의 이미지는 서로 중첩되지 않는 다양한 집단이 서로 경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표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동원되는 청년은 남성과 여성으로 갈리고,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세대별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은 사회적 계층을 반영하지 않는다. 진보 진영도 보수 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이라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금 정치적 엘리트와 일반 대중의 대립과 불신은 더욱 심해진다. 간단히 말해 우리 사회는 하나의 갈등 전선이 다른 전선을 무력화시키는 ‘복합 분열’ 상태에 있다.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러한 복합 분열은 오히려 극단적 분단의 위협을 받지 않는 민주적 통합 상황을 의미한다.

문제는 모든 갈등이 결합하여 단일 전선을 형성하는 ‘단순 분열’의 징후가 보인다는 점이다. 대립적인 단일 전선의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다”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언을 뒤집어 푸코가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정치와 갈등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다른 수단은 관용과 타협과 협상이다. 상호 관용이란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다른 의견과 집단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정치 경쟁자도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타협과 협상이 필연적이다.

전쟁과 같은 우리 정치는 타협과 협상의 자리에 독선과 독재를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경쟁자는 이미 청산되어야 할 적이 된 것 같다. 상대방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단순히 선거운동의 수사학이 아니다. 우리의 양대 정당은 서로를 민주주의의 위협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서로 법치주의를 훼손한다고 비방하고, 제도적 특권을 이용하여 자신을 탄압하고 압살한다고 의심한다. 협치와 협상은커녕 대화조차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전염되어 다른 비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이웃도 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려는 ‘단순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전쟁 같은 정치가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강력한 적대적 이미지로 민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혐오스러운 시도가 계속된다면, 민주적 구조가 내부로 붕괴하는 사회 분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둔 올해도 혐오와 분열이 우리의 정치와 일상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통합과 평화는 정치의 유일한 목표다. 통합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정치다. 문제는 지속적인 정쟁으로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다양해져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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