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음’에서 깨어나기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 ‘깨어 있음’에서 깨어나기

“웃기고 있네.” 얼마 전 대통령실 대상 국정감사장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나눈 필담의 내용이다.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타이밍에 내뱉은 ‘잘못된 말’ 한마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공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이 그렇고, 전 국민을 비통에 잠기게 한 이태원 참사에 관한 질의가 이루어지는 시점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한마디로 적절치 못한 단어였다. 김은혜 수석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사과하였지만, 야당은 국회 모독이라고 과장된 공세를 이어가고 여당은 이들을 퇴장시킨 주호영 운영위원장의 처사에 대한 불만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하는 꼴이 정말 웃기고 있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때로는 의도치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웃기고 있네’는 정말 우리 국민이 정치와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입만 열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하는 짓은 자신이 속해 있는 당파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 웃기는 일이고, 말로는 언제나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당내의 어떤 소수의견도 견디지 못하는 꼴이 웃기는 일이고,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짓을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내로남불’이 일상화되어 도로 아미타불이 되었다는 사실도 정말 웃긴다. 세월호를 겪고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고 거듭 약속하였으면서도, 그 여파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긴다. 그런데도 진상규명과 체제 개혁에는 관심 없이 오직 이 비극적 사태를 어떻게 정략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웃기다 못해 분노를 일으킨다.

그런데 제일 웃기는 것은 진정한 ‘정치’는 이미 오래전에 실종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에 제일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왜 정치가 사라진 것인가? 오늘 나는 국민과 사회보다는 당파적 이익에 매몰된 정치인(꾼?)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날 정치가 적대적 투쟁으로 오해되어 그야말로 개판이 된 것은 정치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를 구원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오래된 관점을 바꿔야 한다.

‘깨시민’ 독단론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이제까지 정치를 선진화하고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려면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한 ‘깨시민’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깨어 있음은 민주 정치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들을 결집하는 조직이 폐쇄적 진영으로 변하면, 깨어 있음은 민주주의 문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독단론과 교조주의로 변질한다. 깨시민은 깨어 있는 자신과 깨어나지 못한 우매한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동안, 자신만이 옳다는 독단론이 시나브로 퍼져나갔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결코 ‘독재’ 성향의 우파 권위주의만이 아니다. 반인종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와 같은 진보 이념과 관련하여 자신만이 옳다는 좌파의 ‘독선’도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독재는 그 양상이 분명하여 쉽게 저항할 수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좌파의 독단론은 그 실체와 폐해를 인식하는 게 쉽지 않다.

우리가 ‘웃기고 있네’라는 말이 초래한 정치적 논란에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김은혜 수석이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분명해진 것은 이 부적절한 필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정치문화의 천박한 민낯이다. ‘웃기고 있네’라는 말을 웃어넘길 수 없는 진영 간 전투문화와 과도하게 예민한 정치문화가 이 말을 이해하는 맥락이 된다. 좌파 정치인들은 이 사건을 국회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아마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인가 보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좌파는 말에 관해서도 어떤 말은 해도 되고, 어떤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설정해왔다.

사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려면 차이와 불평등,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는 언어에 유의해야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없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의, 차별 및 모든 유형의 편견에 더 민감하다. 1930년대 흑인 인권운동에서 유래한 ‘깨어 있음’(woke)은 미국 좌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이었지만, 현재는 사회 문제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적 태도를 일컫는다. 따라서 ‘깨어 있음’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불의에 예민하게 민감한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사회 불의에 민감하고 사회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식으로서의 ‘깨어 있음’이 언제 독선적 이데올로기로 바뀌는가? 오늘날 보수진영에서 워키즘(wokeims) 또는 ‘깨시민주의’(wokeism)는 관용이 없고 도덕적 이데올로기를 따른다는 경멸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워키즘의 반대자들은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이 자신들만이 오직 깨어 있다고 믿고 사회 문제의 범위를 과장한다고 냉소적으로 조롱한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깨어 있음’이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부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직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대립 때문인가? 요즘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용어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깨어 있음’의 긍정적 의미와 기능을 보존하려면 ‘깨어 있음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깨시민주의의 독단론에서 깨어나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깨어 있음’은 한편으로 체계적 불의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적 정치를 공격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고 도덕적이지만, 깨어 있는 개인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거나 자신만이 깨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말싸움으론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깨어 있음’의 긍정적 시민의식이 ‘깨시민주의’로 변질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를 구하는 길이고, 보수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다. 변질의 핵심 동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독선과 정체성 정치다. 진보는 실제로 인권·사회적 불평등·젠더·환경 문제 등에서 의제를 선제적으로 주도해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이념을 가진 정치적 집단과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진보가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립과 대결이라는 공격적 태도를 취할수록 깨어 있음은 점점 더 폐쇄적 이데올로기가 된다. 내가 깨어 있으면 내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사람은 우매한 것이고, 내가 선이면 다른 사람은 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깨어 있음의 정치적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깨어 있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언어 활동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 민족, 종교, 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정치적 올바름’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우리는 중국인을 짱깨로 불러서는 안 되고, 귀머거리 대신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고,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해도 되는 말’이 규범적으로 구분된다. 그렇게 해야 동물권에 대해, 차별받는 장애인에 대해, 그리고 인종주의적 차별에 대해 깨어 있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깨어 있음이 극단적으로 절대화될 때 잘못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독단적 문화가 형성된다.

설령 말 한번 잘못하면 사회에서 매장당하지는 않을지라도 내가 혹시 말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와 자기검열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의 절대적 필요조건인 다원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말만으로는 우리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 노력 없이 정략적 의도로 꼬투리만 잡는 말싸움은 결국 역풍을 맞게 된다. 말싸움으로는 현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웃기고 있네’라는 말이 마지막에 어느 진영을 향할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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