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소득자본주의와 은행 돈잔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자산시장 특히 금융과 부동산시장의 규제 고삐가 잡혀 있는지 여하에 따라 경제가 굴러가는 모양새는 매우 다르다. 개발주의, 뉴딜,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혼합경제의 성공 경험은 자산시장에 대한 나름의 통제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통제 고삐가 풀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자산시장의 고삐가 잡혀 있을 때 생산-노동경제의 기본틀이 작동한다. 이윤이 지대보다 우위에 선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자본으로 운동하며 M-C-M′가 기본공식이 된다. 자본과 노동은 갈등하면서도 소득을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어 갖는데 그 유형은 다양하다. 비용의 역설을 넘어 자본과 노동이 윈윈게임을 추구할 때 소득주도 성장체제가 나타난다. 반면에 자산시장 고삐가 풀리면 눌려 있던 소유적 자본이 깨어나 자산-부채경제(불로소득자본주의)가 발전한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창출에 집중하지 않고 생산외부에서 소유적 자본 또는 불로소득추구 자본으로 운동하면서 지대추출 또는 불로소득 취득에 몰두한다. 소유적 자본운동의 기본공식은 자산의 소유 및 통제에 기반한 M-A(자산)-M′와 M -M′(이자 낳는 자본)의 두 가지다. 이자 낳는 자본, 주식자본, 부동산자본, 지식자본, 플랫폼자본, 외주자본, 자연자본, 세습자본 등의 형태가 활개 친다. 이들은 각종 지대청구권 자체의 강화, 공동자산의 사유화(인클로저의 항구화), 독점적 시장지배, 세습화 등을 통해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은행도 변질해 신용창조권을 기반으로 돈을 찍고 부동산담보대출 및 증권화 등을 통해 불로소득을 벌며 거품을 키운다.

소유적 자본과 생산적 자본의 관계에서 대립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주주와 경영자 동맹에 기반한 민중배제에서 보듯 그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협력한다. 자산-부채경제와 생산-노동경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어떤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이며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기후생태위기와 함께 21세기 자본연구의 최전선이다. 자산시장의 판도라상자가 열리고 노동도 유연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살림살이는 부채인간, 세입인간, 반지하인간, 배달인간, 불안정노동인간, 흙수저인생 등의 사슬에 묶인 채 불로소득자본주의의 쓴맛을 보게 된다.

저금리-부동산 자산인플레를 구가하던 자산-부채경제의 모순 때문에 부동산경기가 침체되고 고금리시대가 도래하면서 불로소득자본주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에서 특히 이자 낳는 은행자본이 돈방석에 앉았다. 서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 취약 중산층들이 고금리로 고통받는 반면 거대 과점은행들이 그들끼리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이는 약자의 희생 위에 자산계급이 횡재를 챙기는 윤석열판 불로소득-특권자본주의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4대 금융지주는 주로 이자장사로 사상 최대 순이익(16조원)을 거두고 배당금과 성과급으로 뿌렸다. 고금리시대에 편승하면서 예금금리는 통제하는 예대마진전략으로 엄청난 이자수익을 올렸는데 영업이익 대비 이자이익 비율이 90%를 넘는다. 반면 3040대출자는 빚 갚는 데 소득의 40% 이상을 쓴다. 나아가 은행공공성이 붕괴되고 자산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제도금융권에서 밀려난 수많은 금융배제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주주에 2조5000억원의 배당(전체 배당의 63%)이 빠져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대은행의 외국인지분율은 매우 높다(KB국민 73%). 금융지주들은 총주주환원율(자사주매입포함)을 30%대까지 끌어올렸는데 이는 외국인펀드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 것이다. 외자와 4대은행 내부자들이 손잡고 돈잔치를 했다는 말이다.

은행공공성이 무너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보호와 건설적 갈등조정을 위해 큰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고 새롭게 정책역전(긴축통화정책과 확장재정의 결합)도 일어나고 있는 대전환기에 윤석열 정부가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시대착오적 ‘줄푸세’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기본 인식이자 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성을 강조하고 과도하게 규제했다면서 “낡은 규제를 깨고 금리·배당 등 가격변수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놓고 은행 돈잔치를 비판하고 은행이 공공재라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신년사에 “기득권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 정부야말로 미래가 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엉뚱한 데 화살을 겨누지 말자. ‘국방보다 더 중요한 은행공공재’를 가지고 외자와 경영자들이 돈잔치 하고 있는데 미봉책으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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