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요금 인상, 정말로 필요한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일상에서 ‘공공재’라는 말은 공익적 가치가 있거나 정부가 공급하는 재화의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경제학 책에서 공공재는 그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정의된다. 경제학적 공공재는 그것의 소비에 있어 실제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타인과 경합을 벌일 필요가 없는 재화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정의가 이렇다 보니 현실의 예는 드물다. 이를테면 한산한 무료도로나 달빛이 공공재인데, 도로가 한산하면 대개 유료고 무료도로는 막히기 십상이다. 시인 이백이 아니고서야 달빛도 딱히 쓸모는 없다. 공공성에 대한 시민들의 일상 속 욕구가 커갈수록 그 의미가 협소하게 고정된 학술용어와의 충돌도 늘어난다.

실은 경제학자들도 공공재 이론으로 현대 정부의 광범위한 경제 활동을 설명하기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정해 왔다. 재정학의 아버지 리처드 머스그레이브의 1957년 논문은 재정의 3대 기능을 공공재 공급, 소득재분배, 경제안정화로 요약한 기여로 유명한데, 같은 논문에서 저자가 ‘가치재’라는 개념을 통해 정부 개입의 규범적 측면을 정당화하려고 했던 시도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머스그레이브는 공공재는 아니나 의무교육처럼 소비자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국가가 공급해야 마땅한 재화를 가치재로 이름 붙였다.

이후 가치재를 둘러싼 논의는 주변으로 밀려났지만 미국 예일 대학의 법률가 귀도 칼라브레시의 2016년 저서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해석이 재등장했다. 칼라브레시는 생명 안전의 가치를 돈으로 저울질하는 것이 부당하듯 가치재는 상품화된 여느 시장재화처럼 취급되어서는 안 되며, 오늘날과 같이 심각한 불평등의 시대에는 개별 소비자가 얼마나 가격을 치를지 하는 지불의사를 기준으로 가치재를 배분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좁은 의미의 공공재는 아니지만 공익적 가치가 큰 재화라면 시장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이 제공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경합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학적 근거가 없지 않다. 공공의료, 공공주택, 공교육에 대한 지지는 의료, 주택, 교육이 가치재라는 인식에 근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가치재의 공급가격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 가치재는 공공재가 아닌 재화를 공공재처럼 공급하려는 것이므로 머스그레이브의 제언처럼 무상 현물 공급이 원칙이다. 공급에 소요된 원가는 조세수입으로 충당한다. 따라서 가치재 공급 과정에서는 사회연대 원리에 기초한 교차보조가 자연스럽다. 예컨대 아동급식을 제공하면서 대금을 받아 원가와 이윤을 회수하려는 것은 아동급식을 가치재가 아닌 시장재화로 간주하는 태도다. 아동급식이 가치재라면 그것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낮은 가격 내지는 무상이어야 한다. 아니면 결식아동한테 무상급식을 못 주겠다고 눈물 흘리는 못난 어른이 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치재를 공급하면서 해당 가치재의 원가만큼을 요금으로 받아야 한다는 경제원리는 없다.

요즘 전기와 가스의 요금 인상을 두고 진보진영 내에 논란이 많다. 필자가 보기에 최근 논란에서 우리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한 가지 경제학적 질문은, 민중의 경제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에너지 사용의 사회적 필요 수준을 우리가 합의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정된 필수적 에너지는 가치재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다. 물론 어느 정도의 사용량이 필수적인지는 경제 상황이나 정치 지형, 진보정치의 역량 등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 기본권’이 정의 불가능한 개념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진보정치가 나서서 에너지 자체가 가치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할 일은 더 더욱 아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일 여력이 없는 가난한 한계 소비층한테 요금을 더 받아 가격의 시그널 기능을 회복하려는 것이 기후정의인지도 의문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운동의 장기 전망이 기후정의와 일치한다는 비전이다. 에너지 공급 부문에서 공적 체계를 확대하고 재공영화로 나아가는 길이 노동운동의 대안이라면 최근 논란은 가볍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필수적 에너지의 가치재 특성을 부인하고 에너지 가격을 원가 회수에 초점을 맞춰 정상화하는 과정은 결국 에너지 부문의 전면적 시장화와 민영화 확대로 이어질 위험이 작지 않아서다.

에너지 요금으로 해결할 일이면 세금으로 해결해도 된다. 그러니 혼동하지 말자. 공기업의 재정건전성은 국가 재정으로 책임져야지 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그 부담을 떠안을 일이 아니다. 당면한 공기업의 재무적 부담은 횡재세 등 증세에 기반한 재정 투입과 비필수적 에너지 사용에 대한 단계적 요금 인상으로 조절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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