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대출이라는 장벽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오래간만에 A와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의 목소리는 늘 활기차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을 선택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아시아의 낯선 땅에 왔던, 눈이 커다란 꼬마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에서 보내면서 이제는 자신의 독특한 피부색으로 먼저 농담을 건넬 정도로 훌쩍 자랐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A에게 밤샘 알바가 힘들겠다고 했더니 그것보다 손님들이 자기를 볼 때마다 ‘방송인 조나단을 아느냐’고 물어봐서 손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대답하는 게 더 힘들다며 너스레를 떤다. 학교 다니며 밤낮을 뒤집어 알바를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에 부족하다며 이번 참에 자기도 유튜버를 할까 고민 중이라 해서 그럴듯한 채널 이름도 지어줬다. 알바가 힘들면 학자금대출을 좀 알아보라는 말에 A는 “변호사님, 우리는 그런 거 안 돼요”라고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A는 한국 사람과 구별되는 ‘우리’이고, 한 해 40만명이 넘는 대학생이 이용하는 학자금대출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사실 법은 그렇지 않다. 난민법은 “난민으로 인정되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법과 학자금대출조차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의 차이는 아찔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법에서만 특별히 이런 규정을 둔 것이 아니다. 1951년 채택된 난민협약도 같은 내용이다. 난민 발생국가에서 외국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관계없이 자국의 영토에 들어온 난민은 자국민과 차별 없이 보호하자는 상호주의 배제가 난민 처우의 핵심이자 국제사회의 기준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재산과 소득 산정에 어려움이 있거나, 대출 상환을 위한 관리에 손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있다고 외면하면 법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필요성도 크다.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난민 인정자와 그 자녀들이 고등교육으로 진학해 자립적이고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자신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익과 사회통합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 난민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난민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20년 교육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난민 청소년의 3%가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과정에 등록한다. 2010년 법무부에서 최초로 실시한 난민 처우 실태조사에서도 난민에 대한 단순한 보호를 넘어 역량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 학자금대출을 제공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최근 가족 단위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고, 난민 인정자와 같은 지위를 인정하는 특별기여자들의 경우 청소년 자녀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었다. A와 같이 한국에서 성장한 난민 자녀들이 대학의 문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 학기 비싼 등록금을 현금으로만 납부해야 한다면 이들에게 대학 그리고 한국 사회는 커다란 배제의 장벽으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이 바로 난민정책이 보다 세밀하게 교육정책과 결합되어야 할 적절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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