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장옌융(蔣彦永)은 ‘중국의 양심’으로 불렸다. 인민해방군 301병원 외과 주임으로 근무했던 그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당국의 발병 은폐 사실을 세상에 폭로한 인물이다. 2002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는 2003년 7월까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 8000여명이 감염되고 770여명이 사망했다.
당시 중국에서 ‘괴질’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중국의 언론 통제로 그 실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 건 당국의 은폐 시도에 분노한 장옌융이 외신을 통해 당국의 발표가 사실과 다름을 폭로한 4월 이후였다. 그의 폭로 이후에야 중국 당국은 사스 감염 상황을 축소 발표한 베이징시 간부들을 파면하고,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스 영웅’으로 떠올랐던 의사 장옌융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그 이듬해였다. 그는 2004년 2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재평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후 7주간 구금되고 10개월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해 8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당국이 시상식 참석을 불허해 딸을 대리 수상자로 보내야 했던 장옌융은 이후 중국에서 ‘잊혀진 영웅’이 됐다.
최근 그의 부고가 홍콩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장옌융은 지난 11일 자신이 근무했던 301병원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중국 매체에서는 그의 부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빠르게 지워졌다.
장옌융 별세 소식은 중국에서 3년 전 숨진 또 다른 의사를 떠올리게 했다. 코로나19 발생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던 우한중심병원의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이다. 그는 2019년 12월30일 의대 동창 단체대화방에 “우리 병원에서 7명이 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글을 올려 코로나19 발생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대가로 리원량은 공안에 불려가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인정하는 ‘훈계서’에 서명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는 이후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결국 2020년 2월7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에서는 리원량에 대한 공개적인 추모도 허용되지 않았다. 누리꾼들은 중국이 3년간의 ‘제로(0) 코로나’에서 벗어난 지난해 12월 ‘호루라기를 분 자(내부고발자)들은 언제나 기억할 가치가 있다’ ‘더욱 투명한 사회를 기대한다’며 그의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했다.
장옌융과 리원량의 폭로에는 약 17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 그동안 중국의 대응 방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언론·사회 통제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장옌융과 리원량, 두 의사의 용기 있는 고백은 아무리 통제를 강화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음을 일깨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기원 논쟁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보다 투명한 자료와 정보 공개로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만이 중국이 국제사회 보건협력에 기여하고 ‘팬데믹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